2022년 4월 26일(화)
"꽃을 꺾기 위해 덤불 속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한다.
덤불 속 모든 꽃이 아름답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기에
사랑하기 위해서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가 말했다.
1804년 7월 1일 귀족인 아버지와 평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의 원래 이름은 오로드 뒤팽(Lucile-Aurore Dupin)이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조르주 상드라는 남성적인 이름을 필명을 본명처럼 사용했다. 16세에 결혼하지만 오래지 않아 별거한다. 그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돌아와 『피가로』의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조르주 상드는 초기에 당시 프랑스의 관습을 비판하였다. 자연스레 여성의 자유연애를 주제로 하는 연애소설을 주로 썼다. 그러다가 점차 사회소설을 방향을 전환했다가 자연주의 경향을 작품으로 옮겨갔다. 말년에 파리 상류사회의 연애담을 작품으로 남겼다.
그녀는 남장을 한 채 파리 사교계를 출입했다. 작품과 애인은 다다익선이라 말한 그녀는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 음악가 프레데릭 쇼팽 등 당대 최고의 유명 연하 남성들과 연문을 뿌렸다.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프로베르와의 우정도 당시에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녀는 평생 약 2,000명의 사람과 우정을 나눴다. 그 가운데는 연인도 있었다.
그녀는 평생 사회적 관습을 무시하고 조롱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자유분방한 연애를 실천했다. 자연히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그녀의 문학사적 의미는 높이 평가받지만.
조르주 상드가 살았던 프랑스는 대혁명의 시기였다. 1789년 일어난 시민혁명은 왕정을 폐지하고 제1공화정을 수립했다. 그 이후 제3공화정이 성립하는 1870년까지 프랑스는 제1제국과 제2제국의 성립, 카페 왕조의 부활, 제2공화정의 성립 등 몇 차례의 역사적 급류에 휩쓸렸다. 그녀는 역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참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좋아하는 구절이다. 알프레드 디 수자( Alfred D'Souza )의 글이라고 하지만 그녀 또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초 누가 이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산다는 건 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부모를 배우자를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다. 친구를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을 멈추는 순간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이다. 그러니 조르주 상드와 알프레드 디 수자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랑하라! 사랑하기 위해서 상처받는 것이므로'
그리고 또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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