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4일(일)
깨완수토굴의 아침
2021년 8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현남면 현불사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여름 한복판의 날씨 같지 않은 서늘한 기온에 자연스레 눈을 떴다. 깊은 산골이라 해도 한여름의 아침 6시면 날은 진작부터 훤하다. 숙사 문을 여니 청량한 아침 공기가 거침없이 내게 안긴다. 이슬에 젖을까 툇마루에 올려놓은 신발을 고쳐 신었다.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던 고양이 녀석이 내 발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뜬다. 게으른 걸음으로 마루를 내려가는 녀석을 뒤로 한 채 산책길에 나선다.
먼저 숙소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2인 1실치고는 둘이 자기에 좁지 않은 방들이 줄지어 있다. 숙소 방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중 ‘깨완수토굴’이라는 방이 눈길을 끈다. 주지 스님께서 직접 지은 이름이라 하니 뭔가 심오한 뜻이 있으려니 짐작한다. 나중에 주지 스님께서 '깨달음의 완성, 수행을 위한 토굴"이라 일러주셨다.

깨완수토굴
마당 앞 풀들도 여름 한 철 제 세상인 양 짙은 녹색을 자랑한다. 마당 한 견에는 마른 장작더미가 쌓였다. 생뚱맞게 저녁에 모닥불을 피우고 바비큐 파티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심 깊은 산사에서 가당치 않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함께한 교수님이 숙소는 법당과 가깝지만, 사찰의 경계 밖에 있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공기 좋고 물소리 좋은 이곳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이면 이태백의 호연지기를 능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오면 “술이 석 잔이면 큰 도를 깨치고, 한 말의 술이면 자연과 통한다.‘는 그의 기개를 꼭 실천하리라 다짐한다.

클로드 모네 '수련' 속 다리
어제는 늦은 밤이라 몰랐지만, 숙소 앞의 개울에는 귀엽고 앙증맞은 다리가 놓여 있다. 모네의 그림 ‘수련’을 빼닮은 풍경이다. 모네가 활동하던 1800녀대 중반 유럽의 화가들은 일본의 민속화에 푹 빠졌는데, 그들의 일본풍에 대한 사랑은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사회적 유행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 특히 클로드 모네는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자신의 아내를 그릴 정도로 일본풍에 빠졌다.
그런 모네는 말년에 파리 교외 지베르니에 일본식 정원을 만들고, 물위에 일본식 다리를 놓았다. 일본과 한국의 개천 위에는 대개 나무나 돌로 만든 아치형의 다리가 놓여있다. 현불사 숙소 앞 다리가 모네의 그림 ‘수련’ 속 다리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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