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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by 전갈 2022. 4. 27.

2022년 4월 27일(수)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아니 이게 무슨 연극이야?”

“그러게 말이야. 무대 장치라곤 나무 한 그루 달랑 서있네”

“그것도 그렇지만 기다리는 ‘고도’는 끝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맞아. 주인공들은 또 왜 그래? 연극 내내 쓸데없는 이야기만 내뱉고”

1953년 1월 3일 파리 시의 바빌론 극장에서 연극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볼멘소리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이한 연극을 본 관객들은 불평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연극을 보려는 사람은 줄을 서고, 평론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훌륭한 작품이라며 호평했다.

연극의 내용은 고도’(Godot)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뜨내기 남자 두 명의 뜻 모를 대화가 전부다. 여기다 가끔씩 등장하는 사람들의 역시 의미 없는 이야기뿐이다. 두 남자는 50년이나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정작 그들은 ‘고도’가 누군지 모른다. 얼굴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1952년 발간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제다. 이 작품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무엘 베케트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남프랑스 한 농가에 피신해 숨어 살았다. 그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약 없이 기다렸다. 비평가들은 전쟁 중에 얻은 그의 경험이 작품의 중요한 동기라고 말한다. 베케트는 인간을 언제 올지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로 그렸다.

우리 삶도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다. 무언가 될 것 같은 희망과 누군가 와줄 것 같은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끝없이 기다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일과 다름 아니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 나도 ‘고도’를 기다린다. 내게 있어서 ‘고도’는 행복일지 희망일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른다. 어릴 때는 막연히 뭔가 되겠지 하고 기대 했다. 어른이 돼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뭔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기다리는 뭔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은 분명 뭔가 올 것이라는 기다림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야기 속의 두 사람처럼 속절없이 기다린다.

우리는 만남을 목적으로 한 기다림에 익숙하다. 누군가 오리라는 기대를 안고, 무언가 해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산다. 또 뭔가 되리라는 바람으로 긴 시간을 견딘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기다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막상 그것이 이루어졌다 해도 또 다른 기다림을 맞이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오늘은 오지 않았지만, 내일은 ‘고도’가 오리라는 그런 헛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도 그렇다. 만난다는 보장도 없기에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50년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설렌다. 그러나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애가 탈까. 그래서 아무런 약속 없이 만나는 일은 즐겁다.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불쑥 만나면 반갑고 신난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