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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현불사-영원한 것은 없다.

by 전갈 2022. 4. 26.

영원한 것은 없다.

현불사의 또 다른 특징으로 부처를 모신 본당에 현판이 없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웅전(大雄殿)이나 적광전(寂光殿) 같은 불교 경전에서 깨달음을 의미하는 이름의 현판이 붙어 있지 않다. 본당을 진묘원(眞妙院)이라 부르는 것으로 봐서 본당의 이름은 있지만, 구태여 현판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보면 이름으로 건물의 성격 제한하지 않으려는 뜻이라 짐작한다.

진묘원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때 진공묘유에서 진공(眞空)은 참된 공(空)은 절대적으로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空)는 뜻이고, 묘유(妙有)는 그래서 신기하게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진공묘유는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한강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산굽이를 돌고 돌아 서울을 향해 흘러간다.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의 모습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빨간 단풍잎 떠 있는 가을의 한강과 한겨울 얼음 언 한강의 모습은 분명 서로 다르다. 심지어 물안개 핀 아침의 모습과 광폭한 8월의 태양이 뜨거운 한낮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

어느 한순간 혹은 어느 한 구간을 잘라 이것만이 한강이라고 할 수 없다. 한강이라는 이름의 강은 분명 실제로 있지만, 특정 구간이나 특정 시기에만 한강이라 부르는, 즉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한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강은 절대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면서 흘러간다. 이처럼 늘 변하기에 약 500킬로미터 길이의 한강은 오늘도 유장하게 흘러간다.

땅속 깊이 묻은 수도관 속으로 흐르는 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만일 수도관이 외부의 기온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가 되었다면, 계절이나 장소가 아무리 바뀌어도 수도관 속의 물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 수도관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수도관 속을 흐르는 물로 인해 수도관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물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가 없고, 그 변화 때문에 사물은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존재란 처음부터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세상살이에서 처음 그대로 영원히 변치 않는 건 없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랑도 세월 앞에 속절없이 변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며 애절하게 눈물 흘리는 연인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원래 삶이 그러하거늘 무얼 그리 마음에 담을 게 있을까. 심지어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 1년 정도 지나면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새 세포로 교체된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내 몸이 1년 전의 내 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은 것은 없고 그렇기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진공묘유의 철학이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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