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3일(금)
네트워크가 불러온 쪼개기 경제
“소확행은 ‘크고 확실한 불행’들이 잘게 파편화돼 가능하다.”고 권석천(중앙일보 기자)은 말했다. 큰 불행을 잘게 쪼개면 작은 불행이 된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큰 불행을 아주 작은 크기로 쪼개면 불행이 아니라 그저 일상에서 만나는 우린 아주 자잘한 불행은 불행이라 말하지 않고 재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며 가볍게 넘긴다. 문제는 우리에게 닥친 큰 불행을 어떻게 쪼갤 수 있을까. 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 힘든 일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기엔 쉽지 않다. 그럴 땐 그런 아픔을 잘게 쪼개면 될까? 불행을 파편화하는 방법은 아픔을 쪼개는 일이다. 큰 슬픔을 작은 아픔으로 쪼개 버리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은 오래전부터 파편화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일상 전반이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있다. 경제도, 공동체도, 가족도 모두 작은 단위로 나누어지는 중이다. 경제 구조도 회사도 공급망도 작은 단위로 쪼개져 각자가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전환한다. 기업 분할, 주식 액면 분할, 토지의 분할 분양 등 한마디로 쪼개기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예술 작품의 쪼개기 거래가 인기를 끄는 등 경제의 거의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있다.
경제의 파편화와 쪼개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정보 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이다. 인터넷 네트워크 기술만큼 현실을 잘게 쪼개는 것이 있을까. 인터넷이 주도한 연결망은 인간의 사회적 연결을 온라인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오프라인의 끈끈한 연결을 오히려 끊어지고 온라인 공간의 연결이 주류를 이루었다. 네트워크 기술은 SNS 등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네트워크 기반의 인간관계는 쉽게 맺어지지만, 그만큼 쉽게 끊어진다. 메신저에 응답하지 않고 또 탈퇴라도 하는 날이면 그들의 관계는 단절된다. 아무런 말도 없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온라인 공간의 만남이다. 사회적 연결을 강조한 네트워크 기술이 오히려 쉽게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수단이 된다. 인터넷과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인간관계의 역설이다.
경제의 파편화와 원자화
세상은 급속도로 개인화하고, 원자화하고, 파편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쪼개기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가족이 파편화하고, 조직이 분할되고, 각종 동문회가 해체되는 중이다. SNS를 통해 수시로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관계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혼밥이 유행하고 혼술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과거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단체 모임이 작은 단위의 모임으로 파편화된 것이다. 음식도 1인용으로 쪼개지고 장을 볼 때도 혼자 먹을 수 있는 양만큼 따로 살 수 있다.
이런 모든 쪼개기 경제의 이면에는 인터넷과 정보 통신 기술이 버티고 있다. 이들의 발전으로 공급의 시간 쪼개기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켓 컬리의 새벽 배송을 시작으로 한 배송 업체의 시간 쪼개기 배송도 유통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시간 단위의 단기 일자리로 살아가는 사람도 부쩍 증가했다. 소위 말하는 ‘긱 경제(gig economy)’가 하나의 고용 패턴으로 자리한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끼리 주방을 공유하고 창업 사무실을 공유하는 공유경제도 경제의 파편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과거처럼 모든 장비를 갖추고 창업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공유시설을 활용하는 경제도 경제 파편화의 한 유형이다. 주방이나 사무실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들 사이의 특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만큼의 시설만 준비하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 것만 공유하는 경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단 개인의 물적 자산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도 공유한다. 엄밀히 말하면 공유라기보다 쪼개진 각자의 재능을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형태의 경제를 말한다. 필요한 인력을 다 고용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필요한 순간에 고용하는 쪼개서 고용하는 형태다. 이 또한 경제의 파편화로 생긴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작은 단위의 재능과 파편화된 시설만큼 활용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신속한 연결망이 필요하다. 공유경제 속의 파편화도 네트워크 기술이 가져다준 경제 쪼개기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쪼개기 경제학이라는 타이틀로 살펴 볼 것이다. 우리 경제의 다양한 쪼개기 형태를 통해 미래 경제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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