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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경제학

쪼개기 경제학 2(자본주의 자동차는 무엇으로 달리는가?)

by 전갈 2022. 5. 14.

2022년 5월 13일(금)

자본주의 자동차

최근 왜 '쪼개기 경제'가 활개를 치는지 알아보자. 이를 위해 먼저 자본주의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난 후 자본주의가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면서 '쪼개기 경제'가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생활 속에서 너무 당연하게 쓰는 말이다. 그렇지만 가끔 그 뜻이 정확하게 뭔지 설명해달라고 하면 뜻밖에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의 대립하는 체제를 독재라고 말하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런 사람은 대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제제를 공산주의로 받아들인다. 정치 제제인 민주주와 독재 그리고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섞어 이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이들의 차이를 오래전에 배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어슴푸레 이해한 것을 쉽게 내뱉는다.

이러한 혼란 현상을 최근 발전하는 행동경제학에는 휴리스틱(heuristic)한 행동이라 정의한다. 어떤 개념이나 상황을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제대로 판단해야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빠른 판단에 적응한 사람들은 자신이 대충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 로 쉽게 판단한다. 이런 경향이 휴리시틱한 행동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혼동해서 사용하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독재의 개념들을 말할 때, 우리는 곰곰이 따지지 않고 휴리스틱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대부분 사람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제대로 살펴보자. 자본주의는 자본의 주인이 국가가 아닌 개인이고, 개인은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개인이 자본 혹은 소유권의 주인이고, 이것을 시장서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경제 사회가 곧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들 좀더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해서 개인의 소유권을 자유롭게 매매하는 경제 체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 자본주의의 모양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설명하면 어떨까? 자본주의가 자동차라면, 이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네 바퀴를 굴리는 엔진이 있어야 한다. 이때 자본주의 자동차의 엔진은 시장 혹은 시장경제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시장 혹은 시장경제라는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되는 셈이다.

엔진을 움직이려면 연료가 필요하다. 휘발유 자동차는 휘발유가, 전기 자동차는 전기가 연료다. 그렇다면 시장이라는 엔진의 연료는 무엇일까? 인간의 욕망이다. 이기심이라 불리는 인간의 욕망은 연료가 되어 시장경제를 움직인다. 욕망이라는 연료는 엔진의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여기다 돈이라는 윤활유를 첨가하면 엔진의 폭발력은 한층 더 높아진다.

속도에만 신경 쓰는 자본주의 자동차

우리는 여기서 자본주의를 시장을 엔진 삼아 움직이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욕망과 돈은 연료이자 윤활유다. 이들을 묶어 정리하면, 자본주의는 돈과 욕망을 연소하는 시장경제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다.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엔진이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 돈과 욕망을 잘 자극하면 에너지는 극대화되어 엔진은 최대치의 출력을 뽑아낸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 자동차는 빛의 속도로 달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본주의 자동차에 탑승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버려두고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이 차의 속성이다. 그들이 사막이나 험준한 산속에 버려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양식만 제공하고 최소한의 생존만 보장한다. 현실에는 최소한의 지원마저 하지 않은 자본주의 자동차도 많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의 자본주의 자동차는 부품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삐걱거린다. 그나마도 일부 특권층만 그 차에 탑승해서 알량한 자본주의 자동차의 승차감을 즐긴다. 낙오된 승객들은 아무런 도움도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그림의 떡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하루 먹을 식량도 없는 그들에게 자본주의 자동차는 축복이 아니라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자본주의라는 자동차는 탑승자에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탑승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제는 시장경제라는 엔진이 나날이 성능이 좋아져 자본주의 자동차의 속도도 빨라진다는 데 있다. 올라타기에는 속도가 너무 빨라 낙오자가 점점 많아진다.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갖고, 갖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궁핍한 삶이 이어진다. 자본주의 자동차는 속성상 앞으로 달리는 데만 신경 쓰지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장점이자 한계다.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자.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자본론』(1776)에서 개인의 이기심을 최대화하면 이것을 종합한 국가 경제도 잘 발전한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스미스는 전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했다.

스미스의 의견으로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이기심만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집단 전체로 봐서도 가장 좋은 결과를 달성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의 이익을 파괴하거나 침해하면서까지 개인의 이익을 챙기라는 말은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공공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스미스의 경제학에서 지적한 것과는 서로 반대된다. 처음부터 공공을 위한다는 생각은 아예 자신만 생각하는 경제 활동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제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다면 몇 날 밤이라도 세워 일하지만, 단체나 공공으로 돈이 들어온다면 아무래도 신바람이 덜 일어난다. 결국 경제 활동의 과실이 내 것이냐 아니냐가 밤을 새워 일하도록 하느냐 아니냐의 관건이 된다. 이건 관점에서 본다면, 아예 처음부터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게 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정작 말로는 공공의 이익을 생각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물건은 끔찍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실하게 공공의 재산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데서도 이런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면 공공의 파이를 최대한의 크기로 만들고, 나눠 먹을 것도 많아진다는 스미스의 주장이 타당하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존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라는 자동차를 빨리 달리게 하려면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하도록 자극하면 된다. 돈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면 시장경제의 추진력은 높아진다. 그 결과 자본주의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간다. 그것을 우리는 경제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경제는 빛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그 속에서 '쪼개기 경제'라는 현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