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4일(화)
왜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까
우리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상품의 가격을 지수화한 것을 물가라 부른다. 조사 대상이 되는 상품의 가격인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특히 물가수준이 일정 기간 계속해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 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발생한다는 의미를 단순화해서 보면, 상품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상품의 가격은 왜 오를까? 크게 봐서 상품의 수요 측면의 원인과 공급 측면의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이 적으면 자연히 가격은 상승한다. 아파트 공급량은 작은데 구매자가 많으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다. 이는 수요 측면의 원인에 해당한다. 이때는 공급량을 늘리거나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사용하면 상품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때 투기적 수요가 붙으면 수요 억제정책이 큰 효과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상품 수요는 변동이 없지만,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 재료비나 인건비가 상승하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상품의 공급 측면의 원인이다. 상품의 원가 구성이나 공급망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상품 가격을 상승시킨다. 대표적으로 석유 가격 인상은 재료비, 수송비 등 공급 전반의 상품 가격 상승 원인으로 작용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동산이나 건물을 가진 자산가들의 재산은 더 늘고, 화폐 가치 하락으로 봉급생활자의 실질 소득은 감소하는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주식시장이 불안정해지고, 국내 물가의 상승은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펜데믹의 회복 과정에서 최근 발생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의 침체를 유발 수 있다는 불안함이다.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하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끔찍한 악몽을 되살린다. 실제로 미국은 40년 이래 가장 높은 물가 상승을 기록하자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이자율을 대폭 인상할 준비를 서두른다. 그 결과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세계 각국의 주가도 동반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때는 석유 가격 폭등에 따른 비용 상승의 문제를 기업에 대한 각종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통해 제조 원가를 인하하는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경제 위기는 수요 측면과 공급망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라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양적 완화만 원인이라면 고금리 정책으로 해결하겠지만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고금리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졌다. 큰 폭의 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주가 하락을 유발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경기는 침체하고 경제 전반에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경기침체를 우려해 엄청난 양의 돈을 살포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로 촉발된 연준의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 완화로 발행된 통화량 급증은 화폐 가치를 하락시켰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실물 자산이나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를 폭증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촉발했다. 즉 부동산이나 미국 국채에 대한 가격 상승 압력은 통화 팽창에 따른 수요 측면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지금의 폭발적인 물가 상승의 원인을 양적 완화 정책에 따른 수요 측면에서만 찾을 수 없다. 수요 측면에서만 원인이 있다면, 금리 인상을 통해 수요를 억제하면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양적 완화에 따른 수요 측면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가세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물류 현장의 인력 공급 부족에 따른 공급망 혼란과 그로 인한 물류시스템의 붕괴는 재료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비용 측면의 가격 상승 원인으로 작용한다.
코로나 19 확산 이후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을 봉쇄하는 등 상품 생산 과정의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코로나 19가 회복되는 시점에서 터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타를 가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물류대란, 원자재 가격 폭등, 주요 물품 수급 차질 등 생산과 교역 전반의 문제로 확산했다. 그 결과 각종 상품의 제조 비용뿐만 아니라 부대 비용의 상승을 촉발함으로써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이 때문에 발생한 반도체 부족 현상도 문제 악화에 한몫 거든다. 특히 자동차에 사용하는 칩의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줄어들면서 자동차 가격이 상승했다. 또 세계 각국이 서두른 탄소 중립을 위한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정책도 에너지 가격의 급등을 유발했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필 이 시기의 급속한 친환경 정책 추진으로 상황이 나빠졌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미국 정부의 금리 인상 정책이 물가를 잡을 수 있을까? 상품 가격의 전반적 상승이 양적 완화가 주요 원인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제조 원가 상승이라는 공급의 문제가 가미된 것이라 해결이 쉽지 않다. 원료나 부품을 제때 공급할 수 없는 공급망의 붕괴로 인한 것이라면 큰 폭의 금리 인상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상황이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까닭은 양적 완화 때문에 발생한 수요 증가와 공급망 붕괴로 인한 공급 차질이 겹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을 통해 통화량을 회수한다 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을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여전히 세계 경제는 불안할 것이다. 이제 경기침체의 차가운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그러나 소시민에게 빛의 계절이 있었던가? 희망의 봄이 있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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