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금)
’남자는 설명하는 것을 좋아해!!‘ 맨스플레인
네이버의 사전에서 ‘맨스플레인(mansplain)’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어떤 사건이나 사물 따위에 대해 설명하는 남자. 주로 상대가 여성일 때 자신이 잘 아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남자를 의미한다.’고 나온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태도’이다. 한 줄로 줄이면, ‘남자(man)는 설명하는 것(explain)을 좋아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미국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자신위 경험을 적은 글이 있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는 그녀가 작가라는 사실을 듣자 자신도 책을 좀 안다고 자랑을 했다. 최근에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솔닛이 뭔가 말하려 하면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일방적으로 떠들었다. 그것도 책을 제대도 읽지 않고 서평만 읽고 잘난 척 떠드는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이 친구가 쓴 책이라고요!!” 하고 참다못한 솔닛의 친구가 소리쳤다. 그것도 네 번이나 소리치고 나서야 겨우 그 남자가 무슨 말인지 알아챘을 정도로 설명에 빠졌다. 한마디로 저자 앞에서 네가 뭘 안다고 까부느냐는 말이다.
그 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을 겪은 솔닛은 무턱대고 설명하려고 덤비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이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글을 올리는 사이트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자는 여자에게 길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걸 좋아해~~라는 뜻을 가진 ’맨스플레인‘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최근에는 이런 남자는 여자뿐만 나니라 후배들이나 다른 남자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뜻으로 확장됐다.
시도 때도 없이 타인의 잘못을 들추고 잘못을 지적하려 할 때 나이가 든다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혼자 신나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맨스플레인할 때가 더 그렇다. 후배들이 한 일을 보면 양에 차지 않는 것들이 한눈에 보인다. 세상을 조금 먼저 산 것을 걸 무기로 나는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나는 옳고 타인이 하는 행동은 다 유치하고 틀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고 쌓아온 지식이 모든 걸 다 설명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심지어 내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남보다 잘났다는 확신까지 든다. 그러다 보면 자연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주 지적하고 잘못을 들춘다. 그러면서 꼭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들을 가르치려 한다. 바로 맨스플레인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입을 닫고 지갑을 열자.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고 매사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려 행동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말없이 밥을 사주고 생색내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맨스플레인이 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기 일쑤인데 말까지 많아지면 딱한 노릇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이가 들면 촘촘하던 두뇌의 신경회로가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가 소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경세포가 작동을 멈추면 신경회로가 돌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변한다. 신경세포 다발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시시각각 번쩍이며 전기신호를 내보는 단계를 지난다. 전기신호가 흐르지 않는 두뇌 신경세포는 고립되고, 핵과 세포체가 죽는다. 두뇌신경 세포(neuron)가 소멸한 자리는 구멍이 생긴다. 촘촘한 섬유질 같은 신경세포 다발이 엉성해진다.
두뇌의 빈자리가 많이 생기면 정보를 잘 전달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기능적으로 소리는 고막을 통해 두뇌 신경세포로 전달하지만, 전기신호가 발생하지 않는다. 설혹 전기신호가 발생한다 해도 중간에 끊어진 신경세포와 함께 정보도 사라진다. 뉴런과 시냅스가 끊어졌다면 전전두엽까지 정보가 올라갈 방법이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기능적으로는 듣지만, 머릿속에서 인지적으로는 전혀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이야기만 반복하고 타인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 없는 인지적 난청에 빠진다. 이 순간은 우리는 맨스플레인의 함정에 빠진다.
맨사일런트(mansilent)하자.
차가 다니지 않고 오랫동안 버려둔 도로는 망가진다. 비와 눈에 아스팔트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풀이 자란다. 시간이 흐르면 폴 숲으로 변해 도로가 사라진다. 인간의 두뇌 도로인 뇌세포의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망도 마찬가지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던 무수한 그물망이 생명력을 잃고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 그렇게 되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과거 화려한 시설의 영광을 되새긴다. 주절주절 옛이야기를 반복하고 라떼를 들이마시느라 바쁘다.
맨스플레인은 개인적 성격에 따른 행동 유형이다. 그러나 대개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진다. 노화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젊을 때부터 맨스플레인 성향이 있는 것도 문제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 신나게 자기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끝없이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맨스플레인을 버리고 맨사일런스(mansilent)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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