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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폭풍전야의 고요함)

by 전갈 2022. 7. 8.

022년 7월 8일(금)

신선놀음에 빠지다.

“아니 두 분께서 이 깊은 산 중에서 무얼 하십니까?”

“응 젊은이!! 심심해서 둘이서 바둑을 두고있어”

깊은 산 속으로 나무하러 간 나무꾼 총각과 바둑을 두는 두 노인과 나눈 대화다.

산 아랫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 나무꾼은 오늘따라 큰 나무가 필요해 산속 깊이 올랐다. 숨도 차고 힘이 들어 잠시 쉬어가려던 참에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세가 수려하고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다. 마침 잠시 여유도 있고 해서 두 사람의 바둑 두는 모습을 지켜봤다.

백발이 허연 두 노인의 바둑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바둑판 위에 기기묘묘한 수가 펼쳐졌다. 바둑을 조금 아는 나무꾼이 보기에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넋을 잃고 두 사람이 바둑 두는 장면을 즐겼다.

한 시간이나 지났나? 이제 슬슬 나무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무꾼이 도끼를 들었다. 그러자 도낏자루가 가루처럼 바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도낏자루가 그사이에 썩어있었다. 깜짝 놀란 나무꾼이 뒤를 돌아보니 두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나무 그루터기만 남았다.

아뿔싸!! 알고 보니 두 노인은 하늘에서 사는 신선이었다. 그들 옆에서 넋 놓고 바둑 두는 모습을 보는 즐기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무심코 보낸 시간이 인간 세상에서는 몇십 년이나 됐다.

산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니 풍경이 낯설다. 집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자기 이름을 대며 집이 어딨는지 물었다..

“그분은 제 증조부입니다. 몇십 년 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어찌 그분을 찾으십니까?”하고 그 사람이 되물었다.

재밌는 일이나 놀이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의미로 이 고사를 많이 인용한다.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과 편안함에 취해 정작 해야 할 중요할 일을 놓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어느새 도낏자루는 썩어 바스러지는 법이다.

적자생존의 비정한 현실 앞에서

나라든 조직이든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사람들은 하도 위기를 많이 이야기해서 귀가 따가워서인지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아무리 듣지 않으려 해도 현실은 분명 그러하기에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본주의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대를 물리치는 사람을 품는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는 맞는지 틀렸는지 여전히 논쟁 중인 다윈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남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가 경쟁에서 탈락하는 비정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자본주의의 경쟁이라는 괴물은 피도 눈물도 없다. 오직 날카로운 이빨만 있다. 상대를 공격하고 물어뜯는 그런 잔혹한 이빨을 가진 것이 자본주의 체제다. 그 속에 있는 조직은 현실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에 머무는 순간 상대가 흉측한 이빨로 자신을 갈가리 찢어놓을 걸 잘 안다. 끝없이 몸을 부풀리고 덩치를 키우려는 까닭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강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갖춘 조직도 쉴새 없이 새로운 경쟁에 대비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조직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채찍과 당근’이든 ‘권한과 책임’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구성원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최상의 조직을 만들려 애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조직은 군더더기가 없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배치해서 최선을 다한다. 큰 조직이 이런데 작은 조직은 더욱 경각심을 갖고 경쟁에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 조직의 날카로운 이빨에 처참히 찢길 것이다.

폭풍전야의 고요함

폭풍전야(暴風前夜)는 폭풍이 치기 전날 밤을 말한다.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고기압 상태가 형성되어 날씨가 평온해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을 듯한 맑은 날씨와 미풍만 선선히 분다. 사람들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나들이 가고 즐긴다. 그다음 날 무시무시한 태풍이 몰아쳐 집과 건물이 날아가고 사람이 얼마나 죽을 줄도 모르는 그런 위험을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큰 사건이 터지기 전이나 전쟁 중 적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기 직전에는 유난히 주위가 조용해져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격을 감행했다.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그 전날 독일군은 고요한 노르망디 해변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느긋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음 날 어떤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모르고 그렇게 희희낙락 즐겼다.

그렇다면 경각심을 갖고 준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안타깝게도 그것만이 해답이 아니다. 물론 아무 준비도 없이 그저 즐겁게 지내는 조직보다는 그나마 준비하려는 조직이 낫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놓인 경쟁의 파고는 준비는 기본이고 현명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구성원 모두 마음을 합해 똘똘 뭉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도 지혜롭게 뭉쳐야 한다.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갈 길은 먼데 벌써 해가 지면 어쩌나? 오늘 밤은 어디서 자고 가나? 나그네의 수심이 깊어만 간다. 조직도 나그네의 마음과 같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을 헤쳐나갈 지혜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잘 뭉쳐도 지혜롭지 못하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 밑에 서지 않는다.“고 당태종 이세민이 말했다고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지혜로운 황제로 꼽히는 당태종의 말이라 귀에 쏙 들어온다. 실제 이 말을 당태종이 했는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의미다. 무너지는 담 밑에 서지 않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을 보면 단합하고 지혜를 발휘한다 해도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신선놀음에 빠져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