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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왜 남의 말이 잘 안 들릴까? 2(의미적 듣기)

by 전갈 2022. 8. 4.

2022년 8월 4일(목)

 

장미꽃”이라는 말을 어떻게 듣는가?(의미적 듣기)

명령을 하달받은 뇌의 각 부분은 자신이 보유한 “장미꽃” 정보를 신속하게 전전두엽으로 보낸다. 색깔을 저장하는 영역은 빨간색을, 향기를 저장하는 영역은 깊고 아름다운 향기를, 가시에 찔린 경험을 간직한 영역은 날카로운 가시라는 정보를 전전두엽으로 보낸다. 

 

다시 전전두엽은 뇌의 각 영역에서 올려보낸 빨간색, 향기롭다, 꽃봉오리, 사랑의 속삭임, 선물 등 “장미꽃”과 관련한 지식, 경험, 추억을 종합한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고 난 후 그에 대응하도록 입이나 혹은 눈으로 명령을 보낸다. 그러면 우리는 적합한 말을 하거나 눈빛으로 상대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우리가 상대가 말한 “장미꽃”을 듣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장미꽃”에 관한 지식과 추억이 풍성하면 많은 정보가 전두엽으로 보내진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말뜻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말이나 행동으로 대응한다. 말하자면, 소통이 잘 되는 경우다. 우리의 뇌는 많이 알수록 많은 정보를 뇌의 각 영역에 분산 배치한다. 축적한 지식의 양이 많고 질이 좋을수록 신속하게 전전두엽으로 양질의 정보를 올려보낸다. 그런 사람은 타인의 말을 잘 알아듣고 소통이 잘 된다. 

 

안 좋은 기억만 들린다.

어떤 사람은 “장미꽃”에는 좋지 않은 기억 두 가지만 있다. 마음에 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가 거절당하나 아픈 기억이 하나다. 그 때문에 몇 날을 가슴 아파한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장미 가시에 찔러 피가 난 경험이다. 이 사람은 안 좋은 기억을 빼면 장미꽃에 관한 다른 추억이나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뇌의 다른 영역에 저장된 장미꽃의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상대가 “장미꽃”을 말하면 이 사람의 전전두엽은 실연의 아픔과 가시에 찔린 상처만 떠오른다. 말하자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아는 바가 너무 없거나 좋지 않은 추억만 가졌을 수 있다. 사실 이 사람도 원래는 장미꽃에 관한 다양한 추억과 지식을 가졌다. 워낙 공부하지 않고 뇌를 혹사해 그런 정보를 저장한 뇌 신경세포가 파괴된 경우다. 뇌의 노화로 인해 풍성한 뇌세포 다발이 뭉텅뭉텅 잘려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 담긴 추억과 기억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세월과 함께 세포는 늙는다. 두뇌 속의 신경세포인 뉴런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뇌 신경세포인 뉴런은 더 빨리 노화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자극이 없고 호기심이 사라지면 뉴런은 돌기를 끊어버리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 이렇게 소멸한 뉴런은 뇌가 스펀지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것과 같다. 이곳에는 허공이 있고 정보를 전달할 도로망이 없다. 이 때문에 남아 있는 뉴런이 간직한 정보만을 고집하는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싫어하고 단조로운 생활에 안주한다. 자연 호기심이 사라지고 지적 열망도 식는다. 외부의 자극이 줄어들면 두뇌의 뉴런들은 급속히 고립되고 소멸의 길을 걷는다. 뇌의 연결망이 끊어지고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오래 방치된 빈집의 전선 피복이 벗겨져 구리 선이 삭아서 끊어지는 것과 같다.

 

아예 들리지 않는다. 

살아남은 뇌세포의 연결망은 화석처럼 단단해진다. 과거의 경험이나 소신을 금과옥조처럼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정의이자 진리라 양보할 수 없는 양심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들이 반추하는 기억은 이미 굳어져 화석이 딱딱하다. 어떤 새로운 사실도 그것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가 급속히 노화해 연결망이 끊어진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과 달리 짧은 기억조차 잘 간직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금방 들었던 이야기를 잘 까먹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해서 듣는 사람이 질리게 한다.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듣더라고 기능적으로 듣는 데 그친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거나 뜻에 동조하는 의미론적 듣기 능력이 급속하게 상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