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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이상한 교수 템플 그랜딘

by 전갈 2022. 8. 9.

2022년 8월 9일(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변호사라고? 그것도 이상한 변호사? 드라마 제목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그저 시청자들 눈길 사로잡는 미끼 상품 아니 미끼 제목이라 생각했다. 자폐 이야기이면 눈물을 쥐어짜거나 그저 가볍게 웃고 즐기는 법정 드라마일 거라 치부했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은 나로서는 처음에는 제목이 주는 생경함으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날이 갈수록 시청률이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게다가 거대한 혹등고래의 웅장한 자태가 시원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냥 반짝하다 꺼지는 드라마라고 보기에는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열광할 때는 분명 뭔가 있다. 정말 재밌거나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굳이 외면할 것까지 없다. 1천만 명 이상이 찾는 영화를 보고 한두 번을 빼고는 후회한 적이 없다. 본 사람이 다들 재밌다고 하니 이번에도 믿고 봤다.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1회를 보고 바로 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인 자폐아 변호사 이야기다.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극적인 캐릭터다. 법 조문이란 게 양이 많기로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영우는 그런 엄청난 양의 법조문과 판례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억력을 가졌다. 그 덕에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이긴다. 

 

드라마 중의 대형 로펌 한바다의 변호사들이 아무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 바록 그때 우영우 변호사의 눈에는 거대한 흑동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큰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물보라를 시원하게 뿜어낸다. 바로 그 순간, 마치 바다 깊숙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듯 해결책을 찾아낸다. 변호사 우영우는 법전의 바다 깊숙이 숨겨진 법조문을 건져 올린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변호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많이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런 변호사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게다가 유능하기까지 한 변호사를 만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자폐를 앓는 사람은 착하고 순수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도 고집스러울 만큼 착하고 순수하고 정직하다. 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보는 느낌을 준다. '법'을 빠삭하게 알면서 맡은 사건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자세한 이야기는 드라마를 보면 된다. 내가 감탄한 것은 작가 문지원의 뛰어난 상상력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참 궁금했다. 알고 보니 작가는 배우 정우성과 김향기가 주연한 영화 《증인》의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이름이 알려졌다. 영화 《증인》의 주인공 지우도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와 서번트 증후군을 앓았다. 그런 그녀의 꿈이 변호사였다. 이상한 변화 우영우의 이야기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상한 교수 템플 그랜딘

우영우의 실제 모델이 있지 않을까? 작가의 상상만으로는 캐릭터를 창조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의지와 태도 등은 실제 모델을 보지 않고 그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콜로라도대학교 템플 그랜딘 교수가 우영우의 모델이라는 글을 봤다. 캐릭터 전부를 따온 것은 아니고 일부만 차용했다고 한다. 또 미국 플로리다주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 헤일리 모스도 참고했을 것이다. 

 

탬플 그랜딘 교수는 1947년에 태어났는데 4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는 그랜딘에게 자폐증이 있고, 평생 말을 못 할 거라고 진단한다. 엄마의 양육방식의 문제로 아이와의 교감이 부족하고 엄마가 냉정하게 대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랜딘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는다. 지극한 정성으로 그랜딘을 돌보고 온갖 애정을 쏟았기 때문에 가당치 않은 의사의 말이 크게 좌절한다. 

 

당시는 의술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라 자폐증의 원인을 잘못된 양식 방식 탓으로 생각했다. 그랜딘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신의 장점을 발전시키는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성장했다. 중학교 시절에 놀리는 아이를 때려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진학해 과학 선생님인 칼락 박사를 만나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칼락박사는 그랜딘의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그녀의 장점인 창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녀는 뉴햄프셔주에 있는 기숙학교 햄프셔 컨트리 스쿨에서 공부하고, 프랭클린 피어스 칼리지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는다. 그 후 1975년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교대학원에서 동물학을 공부한다. 그녀가 소의 울음과 소의 곡선 이동 경로를 석사 학위 주제로 정하자 지도교수가 반대한다. 그랜딘은 소의 이동 경로를 곡선으로 설계하면 소가 안정을 취하고 이동 중에 발생하는 사고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사실 이렇게 하면 소에게도 좋고 목장주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일리가 있다고 느낀 지도교수는 목장주의 사인을 받아오면 연구 주제로 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1970년대 중반 카우보이의 흔적인 남은 미국 중서부의 목장은 꽤 거친 곳이었다. 자폐증을 앓는 그래딘의 목장 출입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 거친 카우보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그녀는 기어이 연구를 완성한다. 연구 결과를 지역 신문에 기고하여 많은 목장주의 호응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들의 안정적인 이동 경로를 설계해서 이동 도중에 발생하는 소들의 죽음이나 사고를 크게 줄였다. 더욱이 도살장으로 이동하는 소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이동 경로는 미국 전역 목장의 60% 이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랜딘은 1989년에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의 독특한 능력은 소의 움직임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인식한다. 동물의 세밀한 움직임과 의미를 파악하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동물의 감정을 잘 이해한다. 그랜딘은 어머니의 헌신, 자신의 노력으로 그녀 말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탬플 그랜딘 교수 이야기는 2010년 TV 영화로 만들어졌다. 클레어 캐서린 데인스가 주인공 그랜딘 역을 맡아 감동적인 연기를 펼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주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이 바로 그녀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브래드 피트의 상대역으로 나왔던 줄리아 오몬드가 헌신적인 그랜딘의 어머니로 나왔다. 영화는 2010년과 2011년 많은 각종 상을 받았고, 연기자들도 많은 상을 받았다. 영화의 평점도 꽤 높은 수작으로 한 번쯤 볼 만 하다. 

자동문 앞의 어려움 

변호사 우영우는 회전문 앞에 서면 긴장한다. 보통 사람은 별 불편 없이 통과하는 회전문을 그녀는 통과하기 힘들다. 그래서 늘 문 앞에서 서성이며 난감해한다. 이 장면은 그랜딘이 자동문 앞에 서면 긴장하고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장면과 닮았다. 이들 앞에서 자동문과 회전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경계다. 그랜딘은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에 극도로 긴장하고 불안에 뜬다. 거기에 비하면 변호사 우영우가 회전문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은 보호 본능을 일으킬 정도로 예쁘게 그려졌다. 실제 당사자가 느끼는 난감함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작가가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살짝 가져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 내용은 전혀 다른 색깔과 내용으로 창작했다. 밝고 경쾌하고 또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물론 《템플 그랜딘》은 실제 인물의 삶의 궤적을 그렸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가상의 드라마라는 차이가 있다. 작가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