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
눈은 빨간 장미꽃을 보고 있지만, 눈은 장미꽃을 보지 못한다. 사물을 눈으로 보고 있는데 눈은 보지 못한다. 언뜻 들으면 논리적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게 ‘웬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릴까? 눈은 장미꽃을 본다 해도 꽃 모양을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은 장미꽃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을 망막을 통해 시신경 세포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눈은 장미꽃을 보지 못히고 단지 반사된 빛을 통과시킨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눈에는 사물을 통째로 인식하지는 기능이 없다. 단지 물체에 반사한 빛을 통과시키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눈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장밋빛을 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사물을 인식하는 작업에는 눈의 여러 기관과 뇌의 여러 부위가 동원된다.
우리가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는 일차적으로 눈동자, 망막, 렌즈 등의 시각 장치가 작동한다. 망막과 연결된 시신경을 통과한 빛의 파편은 뇌 뒤쪽의 시각 피질에 모인다. 여기서서 반사된 빛의 형태를 조합한다. 모양을 조합하면 색깔을 입힌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물체의 모양을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으로 보낸다. 따라서 눈을 통과해서 들어온 정보가 어떤 물체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두엽의 몫이다.
장미꽃 모양의 빛의 파편을 조합한다.
우리가 장미꽃을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빛이 장미꽃을 만나면 빨간색 빛은 반사되고 나머지 색은 꽃잎 속으로 흡수된다. 반사된 빨간 색만 눈으로 들어오고 다른 색들은 사라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장미꽃 모양의 선들이 빨간색 파편이 되어 눈을 통과한다. 눈은 장미꽃의 색과 꽃잎 모양의 선들을 본다. 망막을 통과한 장미꽃의 외곽선의 파편들이 뇌의 뒤쪽 시신경 세포로 전달된다. 이곳에서 장미꽃 모양을 조립하고 빨간색을 입혀 장미꽃을 완성한다. 그렇다 해도 아직 이것이 무엇인지를 뇌의 시신경 세포조차도 모른다.
이제 뇌 뒤편의 시신경 세포는 이 모양을 전두엽으로 보낸다. 전두엽은 전달받은 장미꽃 모양을 뇌의 여러 부위에 보낸다. 이것과 관련된 추억과 기억들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명령한다. 장미꽃과 관련된 기억을 저장한 저장소에서 그 정보를 전두엽으로 보낸다.
이제 전두엽은 이것이 장미꽃이고 어떤 색깔이며 어떤 향기를 가졌는지 알아차렸다. 또 장미꽃과 관련되 정보를 모두 소환하여 최종적으로 아름다운 장미꽃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정보를 눈과 코 그리고 손으로 전달한다. 그러면 우리는 장미꽃의 향기를 맡는다.
같은 장미꽃을 봐도 사람마다 묘사하는 형태가 다르고 느낌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마다 뇌의 신경세포에 차이가 있고 시냅스의 강도가 다르다. 장미꽃을 종합적을 판단하는 전두엽의 신경세포 숫자와 연결 형태에 개인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기억한다.
인간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두엽으로 사물을 해석한다. 결국, 전두엽의 해석 차이가 기억과 묘사의 차이를 부른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뇌는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보다 기억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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