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힐 권리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한 번 전파되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정보가 뻗어간다. 정보의 빠른 전달 속도는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 큰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일일이 자료를 찾아야 하고, 문서를 뒤져야 하는 불편함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간단한 키워드 검색으로 최신 정보를 앉아서 손에 쥘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정보의 빠른 전파와 확신이 때로는 불편할 때도 있다. 개인 정보가 한순간에 전 세계로 전파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하다.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정보가 인터넷 공간에 퍼지면 이걸 회수하거나 수정할 방법이 마땅찮다. 수정 자료를 올린다 해도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본다는 보장도 없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이 통제되지 않은 채 인터넷에 유포되는 일이다. 자기도 모르는 채 사진이 인터넷에 버젓이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헤어진 옛 연인이 인터넷에 퍼뜨린 동영상으로 상처받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기니 끔찍한 일이다.
최근 개인이 온라인의 자기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잊힐 권리 또는 잊힐 권리는 정보 주체가 온라인상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통제권리를 뜻한다. 개인의 커뮤니티, 카페, SNS 등에 올린 글이나 동영상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 등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활발한 SNS 활동이 오히려 자기 정보를 누출함으로써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조회 수와 팔로워를 늘리는 적극적 활동이 부메랑이 되어 나쁜 일로 돌아오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의 빠른 정보 확산이 가져다준 부정적인 면이다. 이제 잊힐 권리를 논해야 할 정도로 인터넷의 역기능도 생각하며 SNS 활동을 해야 하나 보다.
잊힐 용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미움을 받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아예 잊힌 사람이 가장 슬프다. 미워한다면 그나마 싫은 감정이라도 남았지만, 아예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 감정도 없다는 뜻이다.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 상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한다. 그러나 상대를 떠올려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심지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온전히 잊힌 사람이다. 좋아함도, 미워함도 아닌 그저 스치는 낯선 바람일 뿐이다.
가끔은 잊힌 사람으로 사는 것도 좋다. 번잡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다. 무리에 들어가 위로받고 위안받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진정 위안해 줄 단 한 명의 벗만 있다면 잊힐 용기도 필요하다.
무리 지어 있어도 해줄 게 하나 없다면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무리 속의 외로움은 더 사람을 힘들게 한다. '고독한 군중'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니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잊힐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불교의 최초 경전인 『숫따니빠따』는 말한다. 연정에서 근심과 걱정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충고한다.
때로는 고독을 벗하며 침잠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일도 좋다. 가끔은 아주 멀리 있는 벗을 만나 회포를 푼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니 굳이 무리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 마음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잊진 사람으로 지내자. 지금처럼 SNS에서 무리 짓는 일이 불상사를 일으킨다면 오히려 고독이 감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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