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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어린 시절 그 많은 '엄친아'는 어디로 갔을까?

by 전갈 2023. 2. 6.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https://m.cafe.daum.net/sunlighthouse/Eoqi/4974

어릴 적 어른에게서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이 나온 마을에서는 “그 아이가 큰 인물이 될 줄 일찍부터 알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일찍부터 비범함을 자랑한 이들이 자라서 훌륭한 인물이 되는 건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 공식에 딱 맞는다. 

 

실제 그들이 어린 시절이 얼마나 특출한 존재였는지 사실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분명 남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칭찬할 만한 기특한 행동 한두 개쯤은 분명 보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성공하고 나면 어린 시절에도 거의 항상 그랬다는 식의 사후확증편향이 널리 퍼진다.     

 

우리는 어느 아이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더구나 학교 가기 전의 어린아이라면 더욱더 떡잎 여부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모든 아이는 어떤 인물이든 될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다. 두뇌의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기능이 없는 3세 이전의 아이는 기억을 할 수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3세가 지나면서 아이들의 두뇌는 빛을 발한다. 어떤 아이는 이때 벌써 천재성을 발휘한다. 아이들의 뇌에는 성인보다 훨씬 많은 1,000조 개 이상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이들 시냅스는 엄청난 호기심과 기발한 생각을 만들어낸다.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때가 바로 3세에서 7세까지의 시기다.     

 

7세가 지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시험과 성적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린다. 성적에 따라 될성부른 떡잎을 가려내기 시작한다. 시험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그 대열에 합류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될성부른 떡잎이 되지 못한다. 시험을 치면 늘 높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은 급기야 수재나 영재의 자리까지 오른다. 적어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저학년 시절의 성적이 그대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때 성적이 중고등학교로 그대로 이어질 확률은 높지 않다. 초등학교보다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를 진학할수록 경쟁이 치열해진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우수 학생이 차지할 자리는 모자란다. 자연스레 될성부른 떡잎에서 그저 평범한 떡잎으로 추락한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는 될성부른 떡잎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숫자는 확연히 줄어든다. 그중 극히 일부가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으로 진학한다. 명문대학을 진학했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 극소수만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큰 인물이 된다. 어릴 적 될성부른 떡잎들은 어느새 평범한 나무로 자란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끝내 큰 나무로 자라게 한 것일까. 태어날 때 비범함이 들어낸 사람들이 끝까지 그 천재성을 발현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될성부른 나무가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목으로 자라는 경우도 있다. 

 

엄친아는 어디로 갔을까

초등학교 우등생의 90%는 몰락한다. 초등학교 시절 잘난 떡잎의 90%가 될성부른 나무가 되지 못한다. 최승필의『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50%가 평균 90점 이상의 우등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이 비율이 30%로 준다. 중학교에 가면 이 비율은 다시 10%로 줄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초등학교 때 우등생의 중에 우등생을 유지하는 비율이 5% 감소한다. 

 

사교육에 의존한 공부 방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효과가 줄어든다. 점차 성적이 하락한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반드시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될성부른 떡잎의 판정 기준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잘 나가던 아이들의 90%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평범한 학생이 된다. 어린 시절 그 많은 '엄친아'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과외 교사나 유명 학원에서 받은 사교육의 효과는 성적 향상으로 바로 나타난다. 전 과목 만점을 획득하는 아이들도 많다. 애석하게도 과외나 사교육의 힘으로만 성적을 올린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힘이 모자란다. 상당수의 학생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우등생 대열에서 이탈한다. 개중에는 사교육과 궁합이 잘 맞아 끝까지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도 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면 성적이 우수한 또래 아이들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 풀이에 초점을 맞춘 사교육만으로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더디지만 종합적 사유능력을 갖춘 아이들의 저력이 발동을 건다. 명확한 목표 의식과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사교육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공부가 즐거울 리는 없지만,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아는 아이를 당해낼 수 없다. 

 

KDI 연구위원 김희삼의 연구 "왜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한가?"(2010, 한국개발연구원)를 보면, 학원이나 과외 강사의 시험 성적을 올리는 시험 맞춤식 교육으로는 성적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 시간 증가에 따라 성적은 비례적으로 상승하기보다 향상 폭이 줄어드는 체감 현상을 보인다. 사교육 시간과 사교육비는 증가하지만, 성적 향상 효과는 더욱 줄어든다. 성적 향상 효과도 주로 그해의 단기적인 효과에 그친다는 것이다.  

 

부모들의 교육 투자는 하위권 학생들의 학습 보충에 있지 않다. 그보다 상위권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한 사교육에 투자가 집중된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올린 성적도 사교육의 효과로 과대포장된다.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의 경험이 많을수록 대학 학점, 최종 학력, 취업 후 임금과 같은 중장기적 성과도 높다. 과도한 사교육은 효과성이 낮고, 사교육을 받더라도 진로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배양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걸 부모들이 받아들이고 기다려줄까. 그게 관건이다.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고, 마음 강한 아이가 세상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부모도 잘 안다. 그런데도 부모는 늘 불안하다. 우리는 늘 누군가 비교한다. 친구 집 아들은 공부를 잘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그럴까? 누구 집 아이는 의대를 갔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못하다. 알게 모르게 엄마가 내쉬는 한숨에 아이들은 주눅 든다. 그 유명한 '엄친아'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자기주도학습도 좋고 스스로 학습도 좋다. 문제는 부모가 참고 견디고 인내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끝내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으면 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걸 극복할 수 있다면 떡잎이 떨어져도 받아들일 수 있다. 잘난 떡잎만 자라서 크게 쓸모 있는 재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못난 떡잎도 자라서 얼마든지 제 몫을 해낼 수 있다. 세상 사는 사람이 모두 큰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그거야 말로 아름다운 나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