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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끝판왕 강태공

by 전갈 2023. 2. 8.

 

https://smartbooks1.tistory.com/326

약 3,000년 전 중국에 강태공(姜太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 본명은 강상(姜尙)이고, 강태공은 ‘낚시꾼’을 비유해서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그는 기다림의 대명사요, 참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나이 70이 되도록 변변한 벼슬 하나 없었다. 그는 늘 책을 보거나 아니면 강가에서 낚싯대만 드리웠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급기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아내가 집을 나갔다.      

긴 세월을 그는 참고 기다렸다. 70이 넘어 그는 바라고 고대하던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16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80살이 될 때까지는 궁하고 살았고, 나머지 80년은 세상에 뜻을 펼치고 영광스럽게 살았다. 그의 삶을 빗대어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그의 삶은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다.

     

매일 강가에서 낚시했지만, 정작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가 드리운 낚시에는 바늘이 없었다. 빈 낚싯대만 강물에 출렁인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오직 벼슬길에 올라 자기 뜻을 펼칠 날만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주(周) 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정치에 입문하고,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과 함께 주나라를 세웠다.      

 

강태공이 160살까지 살았다 하나 그건 과장된 말이다. 그의 오랜 기다림과 뜻을 펼칠 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는 정말 오래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어코 빈 낚싯대로 자기의 세월을 낚는 데 성공했다. 늦게라도 자기 재능을 펼칠 기회를 잡은 그는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수많은 실력자 가운데서 제 뜻을 펼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극히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 하늘을 품을 기개가 있고, 천하를 울릴 재주가 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그들은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지 수십 년이 지나도 뜻을 펼치지 못했다. 끝내 초야를 떠나지 못한 이들은 쓸쓸하게 꿈을 가슴에 묻었다.

 

실력이 출중하고, 뜻이 바다를 덮고도 남는다 해도 쓰임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하늘을 부릴 신묘한 재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강을 메우고 산을 깎을 지략이 가진 들 뭐 하랴. 인연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 것을. 강태공은 기회를 잡았으니 그나마 행운아다. 세상의 수많은 천재가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걸 보면 보통 사람의 신세가 그리 박절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할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발로 세상에 나가 기회를 찾는 사람도 있다. 은둔한 채 때가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때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강태공이 살던 그 옛날에 비해 자기 발로 기회를 만드는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SNS는 훌륭한 자기 홍보 수단이다. 오늘도 유뷰브에 새로 올라오는 동영상이 그렇게 많은 이유도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삶은 참 묘하다. 이게 말이 될까 싶은 영상이 크게 히트 치는 경우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환호를 이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작이 나오는가 하면, 전문가가 외면한 작품이 사람들의 인기를 끈다. 그러니 사람들은 기를 쓰고 찍고, 무언가를 만들어 SNS에 올린다. 그런 그들을 단순히 관종이라 깎아내릴 수도 없다. 그들 나름대로 계산해서 승부를 걸기 때문이다.  

 

내용이 말이 되든 안 되든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끼와 배짱이 있으면 된다.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성 들여 만든 것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만드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 내용도 없고 자극적인 것으로만 승부한다면 인기가 오래가지 못한다. 뜨거워진 속도만큼이나 빨리 식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지금은 강태공처럼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릴없이 세월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아예 낚싯대 수십 개를 드리운다. 그것도 고래를 잡을 만큼 큰 바늘을 끼우고 말이다. 그렇게 해도 누가 고래를 잡을지 아무도 모른다. 낚싯대 하나마다 고래가 좋아할 만한 미끼를 달아야 한다. 사는 일치고 만만한 게 어디 있을까. 다 공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게 때를 잡으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때를 만나고, 바라든 기회를 잡는다. 또 다른 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기회를 잡지 못한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땀 흘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린다. 다른 누군가는 편안하게 수확하고 열매를 맛본다. 열심히 씨 뿌리고 가꾼 사람이 영광을 거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때를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지금은 빈 낚싯대를 드리우면 헛물만 켜는 세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