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잔인한 이름의 고통
며칠 전 후배가 허리를 삐끗했다. 며칠 간이라도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다. 그런데 치매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요양병원 말고는 없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치매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시설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후배의 어머니가 발품을 팔아 병원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한 곳을 발견하고 입원했다. 후배가 입원한 병원은 새로 생긴 곳이라 시설이 깨끗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병실에 들러 그를 만나는 순간 그런 생각을 접었다. 간병하는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요양 병원의 현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환자 대부분이 치매 환자가 아니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다. 나이가 80세를 넘긴 노인들이 주로 입원해 있다. 표정을 잃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삼시 세끼 식사를 제공받고 약을 먹는 일 외는 하는 게 없다.
노인 치매 환자들의 딱한 사정을 해결할 뚜렷한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형편이라 몇 개 병실을 담당하는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다. 그러니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닌 그런 딱한 형편이다. 오죽하면 가족들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주가 빛을 잃었다.
이들도 한때는 그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깨에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도 가족을 위해 봉사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씩씩하게 헤쳐가며 견뎠다. 가족에게 이들은 찬란한 우주요 세상의 든든한 뒷배였다. 그런 그들이 요양 병원 침대에 누웠다. 하나의 우주가 빛을 잃고, 초점 없는 퀭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아직 후배가 그곳에 있기에는 가당찮은 상황이다. 하는 수 없이 인근에 방을 구해놓고 통원 치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원 치료를 할 요량으로 병원 근처에 방을 구하러 다녔다. 나도 후배 어머니를 도와 지하철역 주변 부동산을 샅샅이 뒤졌다. 햇볕은 또 얼마나 뜨겁던지 대여섯 시간을 걷고 나니 힘이 쫙 빠진다.
병원이 역세권에 자리한 탓에 집세가 만만치 않다. 그것도 한두 달 머물러 통원 치료하는 조건으로 방을 빌려주는 곳은 아예 없다. 하는 수없이 1년 치 보증금에다 월세를 지불하고자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돈만 있다면 집이야 왜 없을까만 빠듯한 형편에 그럴 수도 없다. 뾰족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후배가 입원한 병원으로 갔다.
치매 전문 병원이나 시설에는 간병인이 턱없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치매 시설에서 간병인 1명이 6명에서 심지어 10명의 환자를 돌본다. 그들이 그 많은 환자의 식사와 배변을 보조하는 일만 해도 벅차다. 게다가 정신까지 온전치 못한 중증 환자를 돌보는 일은 몇 배나 힘이 든다. 제대로 환자를 돌보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 현재의 치매 간병 시스템이다.
요양 병원이나 민간 시설은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그래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인도적 차원에서 간병인을 많이 투입하고, 요양 보호사도 많이 고용하면 좋다. 그것도 다 돈이 들고, 이들 기관의 이윤을 줄어들게 하는 일이다. 병원과 요양 시설의 도덕적 호의에만 기대기에는 현실은 차갑다.
긴 병에 효자는 없지만, 긴 병에는 어머니가 있다. 참으로 놀라운 모성애다. 그렇지만 모성애에만 기대어 간병을 맡기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후배의 삶은 너무 가혹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고통을 받는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칭찬받고 복 받아야 할 그가 힘든 상황이다. 삶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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