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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경제학

이이는 절대 변할 사람이 아니야!!

by 전갈 2023. 6. 17.
사진 출처 Pixabay

처음 그 느낌과 그 설렘으로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설렘과 떨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슴은 두근거리고 손끝만 닿아도 전기가 통한다. 온종일 손을 잡고 있어도 싫기는커녕, 황홀감이 살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눈을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밤이나 낮이나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른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고, 어떤 표정을 지어도 사랑스럽다. 연인이 씌운 콩깍지에 눈이 멀어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감정, 이 느낌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절대 사랑의 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사랑은 몰라도 내 사랑만큼은 불멸하여 신화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렇게 믿었던 사랑이 나를 배신하다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내 사랑이 먼저 식을 줄이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전화하고, 의례적으로 만나는 일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과연 영원한 사랑이 있기는 한 걸까? 잉겔로레 에버펠트는 저서 『사랑은 없다』(강희진 번역, 미래의 창, 2010)에서 살아생전에 불멸의 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그들이 죽음으로써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 그들의 운명이 꼬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평생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도 심심하고 무료한 일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에버펠트는 주장한다. 

 

사랑에 빠진 상태는 '마약 칵테일' 효과와 같다는 컬럼비아대학 마이클 리보비츠(Michael R. Liebowitz) 교수의 주장도 흥미롭다.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상태는 마약이 취한 사람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은 아편이나 헤로인이 주는 것과 같은 황홀함과 환각 증세를 맛본다. 어떤 환각도 영원할 수 없는 법이고, 언젠가는 깨어나기 마련이다. 제정신을 차리는 순간, 활활 타오르던 사랑도 종말을 맞는다.  

 

"사랑에 빠지면 다 미치게 돼.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미친 짓이거든"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Her'에서 나온 대사다. 우리는 미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하긴 뜨거운 사랑에는 광기가 있고, 우리 사랑에도 중독성이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문학 작품 속 사랑은 더 그렇다. 에밀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사랑은 너무 뜨겁다. 그런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연인들의 머릿속 화학물질이 만들어낸 환각 작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기쁨도 서서히 사라지고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저서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정명진 번역, 생각의나무, 2005)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 그녀는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변화를 보여준다. 많은 심리학자나 뇌과학자가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타고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마이클 리보비츠와 헬렌 피셔가 주장하는 머릿속 화학물질의 작용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헬렌 피셔는 사랑은 갈망에서 끌림으로, 끌림에서 애착의 3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단계마다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달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남녀가 처음 보고 싶고 그리움이 싹틀 때는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젠이 활발하게 솟는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쌓이고 사랑에 빠질 때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용솟음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꼭 붙어사는 닭살 돋는 연인이 될 것이다. 얄궂고 변덕 넘치는 게 사람 마음이라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없다. 마음이란 두뇌 신경세포의 연결망의 전기적 신호의 흐름이다.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같은 화학물질의 변화는 전기적 신호의 흐름을 변화시킨다. 전기적 신호의 크기와 강도가 변하면 마음과 생각이 변한다.

 

사랑의 불을 지피고 타오르게 하는 화학물질이 변하지 않으면 사랑은 한결같다. 어쩌면 두 사람은 “우리 이대로 쭉 살아갈래”라고 한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수많은 소설과 문학작품도 애초부터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소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사랑이 식고 서로가 데면데면한 경험을 한다.

 

안타깝게도 사랑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限界效用遞減의法則)이 적용된다. 모든 욕망이 그렇듯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포만감을 느낀다. 욕망의 포화점을 지나면 욕망은 사라지고 공허만 남는다. 사랑은 포화하기 전에 변곡점을 먼저 만난다. 맹세가 굳건한 사랑이 알고 보면 더 쉽게 변한다. 사랑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사랑의 세기가 약해진다. 그러다가 사랑의 포화점을 지나면 사랑은 식기 시작한다. 사랑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것은 연인의 사랑이 안고 있는 태생적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