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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경제학

왜 청년의 시간은 더디고, 노년의 시간은 빠를까?

by 전갈 2023. 6. 17.
사진 출처 : Pixabay

 

젊다는 것이 가장 좋은 무기이긴 하지만

일요일 오후 4시, 초여름의 햇볕이 따갑다. 모처럼 젊은 친구와 대화할 일이 있어 동네 앞 스벅에 왔다. 예의 바르고 반듯한 젊은 청춘이라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다. 넓은 2층에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마침 두 사람이 빈자리가 있다. 그동안 모아둔 기프트 쿠폰을 쓰기에 알맞은 기회다. 옆자리와 간격이 넓어 대화하는 데도 편하다.      

 

청춘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가고 싶은 길과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삶은 얄밉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 앞에 오직 할 길만 있으면 고민거리가 하나 줄어든다. 그런데 늘 두 갈래 길이 놓여 있고, 그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어느 길이 내게 맞는지 알 길 없어 고민이 깊어진다.

     

빈약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가 청춘을 방황하게 한다. 주머니가 풍족하면 갈등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아니면 미래라도 확실하면 가난한 현실은 아무 걱정도 없다. 둘 중 하나만 갖춰도 세상이 덜 힘들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청춘은 두 가지 다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생각이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대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뭘까요?”

“글쎄요? “

“젊음이 아닐까요?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아...”     

 

그렇게 말은 해도 아직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깨달을 때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한창 젊을 때는 막막하고 안갯속에 갇힌 기분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시도해서 실패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이 많으니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아니면, 꼭 이 길이 아니래도 새로운 길로 가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다.      

 

한계시속체증(限界時速遞增)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짧아진 시간만큼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빨라진다. 시간이 가속 페달을 밟는 바람에 세월은 눈썹을 휘날리며 빨리 달아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작아질수록 시간에는 한계시속체증의 원리가 작용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시간의 속도는 그전 해의 속도보다 더 빨라진다는 뜻이다.  

 

 2021년 여성의 기대 수명은 86.6세로 남성의 기대 수명은 80.6세이다. 기대 수명의 절반을 기준으로 자기 나이와 비교하면 반환점을 돌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직 반환점이 돌지 않았다면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이미 반환점을 통과한 사람의 나이가 기대 수명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한계시속체증(限界時速遞增)으로 흐른다.  

         

사람들은 50대의 시간은 시속 50km이고, 60대의 시간은 시속 60km, 70대의 시간은 70km로 흐른다고 말한다. 이 말은 1년이 흐르는 속도가 시속 1km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기 삶의 반환점을 돌기 전까지는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20대는 시속 20km, 30대는 시속 30km의 속도로 흐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환점을 지나면 이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증가하는 한계시속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한계시속체증

기대수명을 100세로 보면 절반이 되는 반환점은 50세다. 이것을 기준으로 50세 이전에는 나이만큼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했다. 5세는 시속 5km, 10세는 10km로, 이렇게 쭉 이어져 50세까지는 시속 50km로 일정하게 빨라진다. 그러다가 반환점을 지나 55세가 되면 시속 57km, 60세가 되면 66km로 점차 빨라진다. 기대수명의 마지막 해인 시속 334km로 정신없이 빨라진다. 이 수치는 필자가 가상으로 예를 든 것이지, 사람마다 느끼는 속도감은 다 다르다.

 

사이언스온(http://scienceon.hani.co.kr/151419)이라는 사이트에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빠르게 흐를까?'라는 글이 실렸다. 한계시속체증과 유사한 내용이라 읽을 만하다. 심리학자 피터 멩건 박사(Peter A. Mangan)가 20대 젊은 사람들과 60대 나이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3분의 시간을 맞추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20대 참가자들은 3분을 3분 3초라 거의 정확하게 맞췄다. 60대 참가자들은 실제 3분을 3분 40초로 느겼다. 이 말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하는 시간보다 실제 시간이 훨씬 빨라진다는 뜻이다.

 

헛갈리기 좋은 이야기라 생활 속의 이야기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사람들이 12시에 점심을 먹고 3시간 후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로 약속했다. 시계를 보지 않고 느낌만으로 약속 시간에 와야 한다. 20대 참가자들은 3시 3분에 도착했지만, 60대 참가자들은 3시 40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제 오후 3시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오후 3시 40분이라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났지?"

 

60대 참가자들은 실제 시각 3시 40분을 3시로 착각했다. 3시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맹건 박사는 이런 착각은 나이에 비례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우리 뇌 안에서 도파민 흐름이 변화를 일으켜 시간 감각이 빨라진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도 노화 현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청춘을 격려해야 한다.

기대 수명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날을 생각하기보다 지난날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40대를 지나 50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엔 버겁다는 마음도 든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기 전보다 재기의 기회가 확연히 줄어든다. 점차 마음은 쪼그라들고 투쟁심도 약해진다.     

                

앞일을 계획하는 시간보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나이가 든다는 표시가 아닐까. 뭔가 하겠다는 의욕보다 옛날의 실수를 생각하며 후회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젊을 때는 실수도 개의치 않고 관대했다. 그것을 만회할 기회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인생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실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때 일을 후회한다.     

                

나이 먹는 일은 누구든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마저 주눅이 들 것까지야 있겠나. 뇌의 회로가 어떻게 반응해도 정신으로 그 회로를 바꾸면 된다. 그게 의지적 삶이고 낙관적 삶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도, 지난날을 후회하기보다 내일을 꿈꾸는 게 더 낫다. 어차피 살아야 할 시간이라며 그게 훨씬 보기 좋다.      

 

청춘들은 이런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실례다. 그들은 그들대로 얼마나 고민이 많은가. 어른들은 이미 외롭고 고독한 청춘의 한때를 보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때가 얼마나 빛나는 시절인지 알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러니 그걸 모른다고 젊은이들을 절대 탓할 일이 아니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지금 아는 걸 갖고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우리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 해도 신은 우리가 지금 아는 걸 다 지워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우리가 그랬듯이 지금의 젊은이들과 같은 조건에 처할 것이다. 그러니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다만, 실패해도 재기하고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격려만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