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거대한 에너지 연소 공장
"바보야, 문제는 에너지야!!"
"맞아, 난 늘 배가 고파!!"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와 이들이 만나는 150조 개 이상의 시냅스(synapse)가 그물처럼 연결된 신경 회로망이다. 우주 공간만큼이나 복잡한 회로망이다. 사람의 두뇌는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제일 강력하고 성능이 좋은 컴퓨터라 할 수 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인간의 두뇌는 쉴 때나 잠잘 때도 돌아가는 사유의 공장이다.
인간의 두뇌는 몸무게의 약 2% 내외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소모하는 하루 열량의 20~25%를 혼자 사용한다. 인간의 두뇌는 크기는 작지만, 거대한 에너지 소모 공장이다. 복잡한 뇌를 가동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초고성능의 슈퍼컴퓨터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진화 과정에서 두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람은 음식을 먹고 소화해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불리 먹는 일이다. 동물 사냥이나 식물 채집을 통해 그날그날 먹을 것을 구했다. 음식이 생기면 배불리 먹고, 굶는 날은 참고 견뎠다. 약 1만 년의 농업혁명 이후에서야 곡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다. 적어도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머리를 덜 쓰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는 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에너지를 덜 쓰기 위해 머리도 적게 썼다. 오래 생각하기보다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익숙해졌다. 두뇌는 익숙한 일이나 긴박한 일을 만나면, 빠르게 결정하도록 생각이 진화했다.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생각할 겨를 없이 일단 도망치고 본다. 본능에 따르는 것이 에너지도 절약하고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우리의 뇌는 빠른 결정을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을 택했다. 본능의 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1을 재바르게 가동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생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 2를 가능하면 적게 가동했다. 아득한 과거에는 하루 필요한 열량을 구하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햄버거 한 개로도 하루 필요한 열량을 대부분 충당하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시기였다.
과거에는 대충 맞다 싶으면 과감하게 행동한다. 가능하면 많은 일을 그렇게 처리하고, 대신 복잡한 일만 뇌가 신경 써서 꼼꼼하게 처리했다. 이런 사유 방식은 뇌의 에너지 효율을 증가시켰다. 옛날처럼 사회가 단순하고 문제가 복잡하지 않을 때는 이 방법이 통했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고도로 복잡한 사회에서 대충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은 자칫하면 심각한 패착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시스템 1을 탓할 수는 없다. 중요한 일이건 아니건, 급한 일이건 아니건, 사사건건 시스템 2가 작동한다면 뇌가 남아나긴 힘들다. 뇌에 과부하가 걸려 머리가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넘길 일은 시스템 1이 해결하고, 복잡하고 깊은 생각이 요구되는 것만 시스템 2가 맡으면 된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해 작동하는 것은 훌륭한 생존전략이다.
시스템 1의 부름으로 강림하는 지름신

본능의 시스템 1과 이성의 시스템 2가 자주 엇박자를 낸다. 신중하게 판단할 일조차 시스템 1이 불쑥 나타나 결정해 버린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덜렁 일을 만드는 시스템 1 때문에 낭패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의 말 잘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더구나 요즘처럼 정보가 범람할 때는 시스템 2가 일일이 대응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너무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뇌나 혹은 마음속에 자리한 시스템 1의 작동 양식을 알아야 한다. 생활 곳곳에 우리 뇌의 시스템 1을 자극하는 광고나 전략이 넘쳐난다.
우리는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무료 체험 행사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처음 가입할 때는 1개월 혹은 3개월 무료 체험 후 끊으면 된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정작 3개월 지나면 구독 거부 의사를 밝히는 절차가 귀찮아서 그냥 둔다. 시스템 2가 작동하기 피곤하다고 시스템 1의 결정을 내버려 둔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마케팅 전략이 멋지게 성공한다.
홈쇼핑 광고는 마감 임박이라고 본능을 충동질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고 강조한다. 아니 일종의 심리적 압박이다. 이제 두 시간 뒤면 기회가 끝난다고 말한다. 그도 아니면 이제 다 팔리고 몇 개 안 남았다고 강조한다. 시스템 2가 볼 때는 순전히 많이 팔아먹으려는 광고주의 수작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마음 급한 시스템 1이 시스템 2에 정보를 넘기지 않고 먼저 결정한다.
"빨리 사!! 다른 사람이 낚아챌지도 몰라. 서둘러!!"
"기다려!! 꼭 사야 하는지 내가 분석할게"
명품 매장을 방문하거나 홈쇼핑 채널을 볼 때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보이는 반응이다. 분석하고 기다리라는 것이 시스템 2의 주장이다. 그러나 시스템 2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본능의 시스템 1이 먼저 움직인다. 손은 벌써 신용카드를 들고 있거나 ARS 번호판을 누르고 있다. 어느새 지름신이 강림하신 것이다. 그분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카드 대금 청구서만 수북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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