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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미학

첫 쾌락 그리고 마지막 쾌락

by 전갈 2022. 3. 25.

따지고 보면 사람이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인류가 진화할 때 없어서 안 될 두 가지 본능이 있다. 식욕과 성욕이 그것이다. 먹어야 하는 욕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매일 음식을 섭취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종족의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조건이 식욕의 충족이다. 성욕은 종족의 번식을 위해 그 중요성을 따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섹스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이 번성한 인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는 식욕으로 삶을 유지하고 성욕으로 종족을 유지해 왔다. 성욕과 식욕이 인간의 종족 보존을 위한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욕망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인간은 오래전 멸종되었을 것이다.

 

식사의 쾌락은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쟝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 1775~1826)이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 자리하여 식욕 호르몬을 조절하는 식욕중추와 성욕 호르몬을 조절하는 성욕중추가 시상하부(Hypothalamus)에 같이 자리하고 있다. 식용중추와 성욕중추 사이의 간격은 불과 1.5mm에 불과한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사람들이 식욕과 성욕이 같은 감정의 뿌리에서 나온 사촌 간이라 여겨도 좋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섹스만큼이나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이 강한지 이해가 된다.

 

요리에 대한 욕망과 성에 대한 욕망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 욕망이다. 식욕과 성욕은 본래 그 근원이 같고 서로 통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식욕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간이 동물 가운데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존재라고 하였다. 그는 섹스에 관한 인간의 욕망을 조절할 능력이 없다면 역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한 존재로 전락한다고 하였다. 식욕과 성욕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욕망을 조절하는 뿌리가 두뇌의 같은 장소인 시상하부에 있기 때문이다.

 

식욕은 성욕과 함께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점에서는 같지만, 욕망의 지속 기간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춘기가 되어서 나타났다가 육체가 노쇠하면서 점차 퇴색하는 섹스의 욕망과 달리 식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 어느 시대이든, 어느 문화권이든 식욕은 원초적 욕망이자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욕망이다. 이렇듯 식욕은 훨씬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죽는 순간까지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또 음식을 먹는 일은 은밀하게 간헐적으로 진행되는 섹스에 비해 음식을 먹는 일은 훨씬 더 공개적으로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섹스의 탐구에 기울이는 관심 이상으로 식욕을 탐구하는데 쏟아야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칼턴 쿤(음식의 역사)요리법의 도입은 원초적 동물 상태의 사람을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서 자연에서 나는 음식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날것을 먹던 유인원에 불과하던 인간이 음식을 익히거나 삶아서 먹는 요리법을 개발하면서 원초적 동물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운 요리법의 발전은 살기 위해 먹던 본능적 인간을 먹기 위해 사는 소비적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쿤의 말처럼 요리법의 개발은 인간을 보다 유인원과 달리 인간다운 존재로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카부스 - 미켈란제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나에게 인간을 정의하라면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라 하겠다.”

 

스코틀랜드 작가 제임스 보스웰의 말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불을 다룰 수 있고, 이것을 사용해서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다. “요리하는 짐승은 없다.”는 그의 말에서 날것을 그대로 먹지 않는 인간만의 진보된 문화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요리는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입증하는상징적인 활동이라는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주장을 곱씹어 보면,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여러 기준 가운데서도 요리만큼 뚜렷한 것은 없다. 동물적 본능과 인간적 욕망을 가르는 경계선에 요리가 있다.

 

요리 역사가 마이클 시먼스(Michael Symons)“‘불로 요리하기는 인간의 핵심을 규정하고, 인간성의 책임을 요리사에게 지운다.”는 보다 강한 주장을 펼친다. 역사학자인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Felipe Fernandez-Armesto)불로 요리하는 것은 인류의 인간다움의 지표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핵심은 어떤 요리를 먹는가에 따라 사람의 성격 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격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으면 한결 너그럽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딱딱하고 척박한 요리를 먹으면 성격도 딱딱해진다는 것이다. 레이철 로던은 요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변변치 않은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고급 요리를 먹는 사람들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며 총기도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요리가 단순히 먹는다는 본능적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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