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리의 미학

장 폴 주아리의 요리 예찬

by 전갈 2022. 3. 25.

요리는 예술이다.

사람들의 작품 활동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작품의 독창성, 감동의 보편성, 영혼의 정화성, 감동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진정한 예술품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창조적 작품이기는 하지만 예술품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요리는 즉흥적 방식으로 연주되어 연주가 끝나면 사라지는 재즈와 같이 한정된 시간에만 존재한다. 현대에 와서 재즈는 악보를 만들 수도 있고 음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요리는 예술품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사람이 먹는 행위를 통해 사라짐으로써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음식의 흔적, 사진, 요리법, 기억, 그 어떤 것도 맛을 보는 그 순간의 감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리는 예술품으로 완성됨과 동시에 사라져야 할 운명을 타고난 불완전한 일시적 시간 속의 예술이다.

 

요리가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예술의 기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에 관한 비교적 체계적으로 언급한 철학자는 칸트이다. 장 폴 주아리(2014)가 저술한 <엘블리의 철학자>에서 칸트의 예술에 관해 소개하고 있는데, 칸트는 물질적 필요의 충족이나 타산적인 감각적 쾌락과는 완전히 대립적인 개념으로서 예술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주아리는 칸트의 예술 개념이 요리의 예술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개념을 통해 요리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감각적 쾌락에만 머무르는 것인지 아니면 영혼과 감각을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을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주아리는 엘블리 레스토랑에서 아드리아가 창조한 음식을 먹고 크게 감동한 나머지 요리의 예술성을 담은 <엘불리의 철학자>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주아리는 칸트와 괴테의 미학적 논거를 자신의 철학으로 갈무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요리가 갖춰야 할 예술성의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주아리는 <엘불리>의 제왕인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가 이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현존하는 요리사 가운데 최초로 아드리아의 요리가 예술품이고 그의 요리를 만드는 창작활동이 예술 활동이 될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주아리는 인간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성, 보편성, 재현 능력, 오성의 확장, 그리고 엘리아스와 베커 기준으로 명명한 사조 혹은 그룹의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먼저 독창성이란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달라야 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작품의 규칙성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독창성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술 작품은 탄생하는 순간에 타인의 독창적 작업의 모태가 되는 특정한 규칙성을 포함한다. 예술품이 가지는 하나의 스타일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에 생각 속에서 미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함께 탄생한다. 또 모든 예술가는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한 무의식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독창적인 예술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기준으로 예술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감동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느냐 하는 보편성 여부를 들 수 있다. 예술품에 대한 아름다움이란 즉각적인 쾌감과 관련된 감정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전혀 예술적이지 않은 대상을 보고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소수의 전문가가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 작품은 진가를 드러내어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세 번째 주아리가 주장하는 예술의 기준은 작품의 재현에 있다. 만일 어떤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이 작품이 재현하는 대상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칸트는 예술을 사심 없는 만족이라 하였는데, 이는 한 재현앞에서 영혼이 느끼는 즐거움을 뜻한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의 재현이 아니라 어떤 대상의 아름다운 재현 속에 있는 것이다. 요리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식욕이라는 본능적 욕구와 욕망의 개입을 넘어서야 한다.

 

칸트는 본능적 욕구와 욕망이 개입된 요리는 집착된 아름다움이지 자유로운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없다. 요리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영양 섭취나 식욕을 만족시키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지적이고 사심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어야 한다. 과연 요리가 우리의 본능적 욕구 이상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런 요리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주아리도 지적했듯이 요리가 예술로 진화하기 가장 힘든 기준이 본능적 욕구를 넘은 지적이고 가치 있는 아름다움의 재현이다.

 

네 번째 기준으로 주아리가 설정한 것은 오성의 확장 기준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동은 우리의 지식과 오성(깨달음)을 넓힌다. 회화나 음악처럼 단순한 감각 이상을 표현하는 행위 속에서 예술은 현실과 자아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심화시켜 준다. 요리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요리를 맛보는 순간 지식과 오성의 깨달음이 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기준은 하나의 미학적 혁신이 지속적인 효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지지자들 전체가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그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되고 우연히 하나의 작품이 뚝 떨어진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이는 예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향성이 되고 스타일이 되기 위해서는 작품을 추종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따르는 그룹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아리는 자신이 설정한 다섯 가지의 기준에 비춰볼 때 <엘불리>의 페란 아드리아가 만드는 요리는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드리아의 요리는 독창성, 보편성, 재현성, 오성의 확장, 그리고 사조의 형성 가능성을 만족시키기에 예술품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아드리아의 요리가 주아리의 다섯 가지 기준을 만족한다 해도 감동의 연속성이 없기에 한계를 보인다. 아드리아는 자신의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재료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연속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감동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요리는 직접 맛을 보고 완전히 음식을 소비함으로써 감동을 받는다. 한번 소비된 음식은 레시피를 통해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이미 소비한 음식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음악이나 그림과 같은 예술품들은 원작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시 감상할 수 있지만, 음식은 원작이 소비되기 때문에 재소비가 불가능하다. 같은 조리사가 동일한 레시피로 음식을 다시 창조한다지만 그 맛이 완전히 같다고 확신하기 힘들다. 미세한 맛의 차이와 향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감동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 음식은 음악과 그림과 같은 다른 예술품과는 달리 요감의 포화점이 일찍 발생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음악과 그림은 웬만큼 반복해서 감상하더라도 질리지 않는데,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도 반복해서 먹고 나면 즐거움이 반감하게 된다. 요리가 갖는 감동의 연속성이 다른 예술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예술의 조건에 미흡할 수 있다.

요리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는 창작자의 열정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예술의 가능성이 있다. 요리를 한 가지로 통일하고 최소한의 예약을 받기 때문에 문을 닫을 당시 약 200만 명의 대기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경제적 이윤 동기와는 맞지 않는 행동이다. 1년에 6개월을 영업하고 나머지는 요리 창작에 몰두한 행동도 합리적 경제활동에는 위배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엘불리 레스토랑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스토랑 사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더 많은 손님을 받아야 하고 더 많은 기간을 영업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페란 아드리아의 영업 활동이 상업적 목적을 두지 않았음d,s 분명하다. 예술의 조건들을 대부분 분명하게 충족한다. 다만 요리의 특성상 소비의 일회성으로 인해 감동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음식은 한번 먹으면 사라진다.

음식은 먹고 나면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소비재의 일종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행위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소비 활동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생존을 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음식 재료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소비해 왔다. 경제적 발전 단계가 낮을 때의 하급 요리들은 낮은 단계의 소비 수준을 뜻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음식은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는 소비 활동에서부터 화려한 만찬의 고급 소비 활동까지 포함한다. 시장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대중적 요리는 일반인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음식이 된다. 이에 비해 매우 값비싼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매우 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된다. 세계적인 요리사가 유기농 식재료와 진귀한 재료를 만든 음식은 일반인들이 감히 맛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값이 매겨져 있다. 우리가 음식을 소비하는 활동에서도 소비의 계급화라는 자본주의의 속살이 그대로 들어난다.

 

음식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소비 활동이다. 음식을 먹는 소비 활동은 다른 소비 활동과 달리 사람의 몸속에서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생산활동으로 전환한다. 음식을 먹는 소비 활동은 식욕이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활동이 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음식 재료의 소비 활동

. 요리의 예술 여행

이면서 동시에 에너지를 생산하는 이중적 경제활동이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맛을 음미하는 미각의 즐거움은 음식 재료의 구매와 음식의 소비라는 경제적 대가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음식은 다른 감각의 대상이 되는 활동에 비해 미학적이면서도 경제학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 재료를 살 충분한 여력이 없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이들에게서 한 끼의 식사는 신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받는 일이다. 이들은 값싸고 양이 풍부한 음식 재료에 눈을 돌리고 조리법에는 큰 의를 두지 않는 음식을 먹는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식사는 만족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소비활동은 생략되고 에너지를 공급받는 일에 불과하다.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여 번 돈으로 다시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산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이들에게서 먹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리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요리  (0) 2022.03.25
빅 데이터로 요리하기  (0) 2022.03.25
디지털 요리의 미학  (0) 2022.03.25
첫 쾌락 그리고 마지막 쾌락  (0) 2022.03.25
식욕 본능과 식탐 쾌락  (0) 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