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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현불사 두 번째 이야기

by 전갈 2022. 3. 28.

2022년 1월 6일(수)

 

20221월, 두 번째 현불사 여행이다. 오전 1030분 소사역 앞에서 일행을 만나 함께 출발했다. 오후 1시 홍천 휴게소에서 다른 일행과 합류했다. 오후 3시 조금 넘어 현불사에 도착했다. 짐을 풀어 방에 두었다. 우리는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나는 따로 작년 여름 현불사를 방문한 기행문을 드리고, 시간 되면 내용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하조대 정자

우리는 먼저 양양군의 관광 명소인 河趙臺에 들렀다. 하조대는 조선 초기의 재상을 지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조정에서 은퇴하고 말년을 보낸 정자 이름이다. 조준은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륜은 지략가로 태종 이방원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권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살아서 부와 명예를 한 몸에 쥐고 세상을 쥐락펴락했다. 그들은 한양에서 쌓은 부와 명성을 갖고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와 말년을 경치 좋은 하조대에서 풍월을 읊으며 살았다.

 

이들 두 사람의 성씨를 따서 만든 것이 하조대이다. 탁 트인 동해와 절벽의 기암괴석이 일품이다. 정자에서 내려본 동해의 겨울 풍경은 차갑지만 아름다움이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며 하얀 물보라를 뿌린다. 바위에 몸을 부딪치고 돌아서는 물빛이 짙은 에메랄드색이다. 울트라마린 블루와는 확연히 다른 물색이다. 아마도 너무 아파서 파도에도 옥색이 들었나 보다.

 

현불사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로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각종 안줏거리와 돼지고기 그리고 맥주와 소주 몇 병을 챙긴다. 남자들의 여행에서 술이 빠지면 무슨 재미가 있나? 기왕 동해까지 왔으니 회 한 점을 마다할 수 없다. 우리는 횟감을 사러 바닷가 수족관이 딸린 횟집에 들렀다. 밀치 두 마리를 사서 회를 뜬다. 매운탕 재료까지 챙기니 제법 멋진 횟감이 준비됐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화려한 산속 만찬을 벌이면 된다.

 

장을 봐온 각종 먹을 거리로 푸짐한 저녁상을 차린다. 요리 잘 하는 분이 준비해온 요리 장비가 일품이다. 세프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장비들이다. 먼저 방금 잡은 싱싱한 횟감으로 입맛을 다셨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술을 마시니 취하는 줄 모른다. 연신 고기를 굽는 수고에 감사하다. 금방 푸짐한 상차림을 차려내는 걸 보니 솜씨가 역시 보통이 아니다. 권커니 잣거니 몇 순배 술이 도니 여행의 피로가 확 풀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어느새 산골의 밤이 깊었다.

 

여행이 주는 묘미가 이런 것이다. 멀리 떨어져 방해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떠날 때는 여행 가방 한 가득 설렘을 채운다. 여행이 끝날 때 비운 가방에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신기한 일은 여행에서 돌아와 며칠 지나면 그새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진과 정념 토굴

 

정념과 정진 두 개의 방을 사용했다. 2명씩 한 방을 사용하기로 하고, 나와 일행은 정진 방으로 들어갔다. 깨완수토굴에는 통찰이라 이름 붙은 방까지 합치면 3개의 방이 있다. 황토방이라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원목 결을 살린 침대와 깨끗한 이부자리가 정갈하다. 21실의 방마다 샤워 시설이 있어 뜨거운 물이 금방 데워진다. 불편함이 없이 조용히 쉬다 가기에 그만이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한 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승달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 옆으로 드문드문 별이 검은 하늘에 하얀 꽃잎 수를 놓는다. 도시에는 볼 수 없는 멋진 밤하늘이다. 지독히도 별이 빛나는 밤을 사랑했던 고흐도 별이 되어 저 하늘에서 빛날 것이다. 그의 별이 저기 어드메인가서 나를 내려다볼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초승달의 모습이 뭉개지고 별이 만든 하얀 빛의 꽃잎도 보이지 않는다. 아쉽게도 산골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은 어둠 속에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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