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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포매지의 아침 햇살

by 전갈 2022. 3. 28.

2022년 1월 8일(금)

 

포매지(浦梅池)의 아침 햇살

혼자 있을수록 부지런해야 한다. 혼자 있다 보면 자칫 게을러지기 쉽다. 방도 안 치우고 이불도 개지 않고 그냥 널브러지기가 십상이다. 더구나 사찰 생활이다 보니 집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수행의 길은 고행이라 했으니 편안하면 어찌 제대로 된 수양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진정한 자아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일 것이다.

 

현불사의 독방은 방 안에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따로 없다. 공동 샤워장을 이용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간이 건물에 세탁기와 함께 있다 보니 한겨울에는 여간 추운 게 아니다. 자연히 샤워나 세수 한 번 하기가 꽤 까다롭다. 이 또한 수양이고 보면, 이 정도 불편함은 불편함도 아니다. 진짜 깊은 산중에서는 이런 시설조차 없이 밖에서 세수할 형편이다. 이렇게 보면 현불사의 환경은 꽤 호사스러운 형편이다. 샤워할 곳이 있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늘 감사하며 아침저녁으로 빼먹지 않고 샤워하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씻는다.

 

포매지의 일출

 

현불사와 저수지가 있는 이곳 마을 이름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매호길이다. 현불사 아랫마을은 포매리(浦梅里)라 부른다. 이곳에 매화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두 마을 다 이름에 매화 매()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포매리라면 포구 포()에 매화 매()인데 마을 어귀에 바다가 있으니 매화나무가 많은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을 터이다. 호수 이름이 포매지(浦梅池)인 것도 두 곳의 마을 이름을 따온 것이라 짐작한다. 이곳만큼 산과 바다와 호수가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도 드물다.

 

한겨울의 포매지는 수정 빛이 난다. 하얀 얼음 아래로 비치는 수정 빛이 한기를 더한다. 마침 포매지 맞은 편 산등성이로 아침 해가 올라온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덮인 논밭 너머 산에서 붉은 아침 해가 솟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모네의 인상주의 그림의 효시인 호숫가 일출과 비교해도 빠짐이 없다. 호숫가 방죽 위로 갑자기 찬 바람이 분다. 시린 겨울 호숫가에서 부는 바람이라 매섭기가 한량없다. 눈과 얼음 그리고 시린 바람이 있어 겨울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올 한해는 범상치 않은 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그리고 불심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다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겨울 아침 인상

 

아침 햇살이 드는 포매지의 겨울 풍경이다. 사방이 산이라 해가 늦게 뜬다. 거의 9시가 가까운 늦은 일출이다. 호수 위로 아침 햇살이 반짝이다. 햇살이 호수의 얼음과 부딪쳐 흩어진다. 호숫가의 방죽 너머로 산길이 쭉 이어졌다. 산길 초입까지는 그런대로 걸을만해도 그 길을 지나면 눈이 많이 쌓여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등산화를 갖추지 못해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눈 위에 고라니인지 사슴인지 모를 부지런한 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이다. 생존만 충족되면 욕망이란 애초부터 없는 야생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행한다. 인간처럼 복잡한 머리를 지니지 않은 것을 오히려 축복인가?

 

눈 쌓인 깨완수토굴 지붕

포매지에서 내려와 깨완수토굴 지붕에 쌓인 눈을 본다. 스님께 건물에 붙은 현판을 뜻을 여쭤보니 깨달음 완성 수행 토굴의 약자라고 말씀하신다. 혼자 짐작해본 뜻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처님의 집에서 깨완은 깨달음의 완성이라 짐작할 수 있다. 또 수는 오온(五蘊)의 수행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토굴은 말 그대로 수도를 위한 방이다. 깨달음을 완성하는 수행을 위한 기도의 방이다. 이곳에는 알아차리는 방 정념, 노력하는 방 정진, 꿰뚫어 보는 방 통찰이라 이름과 설명이 붙은 세 개의 방이 있다. 이들 방에서 수행하면 마땅히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꿰뚫어 볼 수 있겠다. 방마다 이름과 설명을 붙인 스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할 따름이다.

 
깨완수토굴의 전경

 

완수토굴 지붕 위에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았다. 황토벽을 바른 집이 유난히 정겹다. 템플 스테이를 위해 일반인에게도 토굴을 개방했다. 방안에는 두 개의 나무 침대와 화장실을 겸한 샤워시설도 갖췄다. 침대 위에 놓인 이부자리가 유난히 정갈한 걸 보니 보살님의 손이 보통 매우실 것 같지 않다. 방안에는 황토벽이 그대로 들어나 보여 특급 호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토속미가 물씬 풍긴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고 나면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손쉽게 시멘트 벽돌로 대충 집을 지을 수도 있지만, 황토벽돌 집을 지은 걸 보니 손님을 맞이하는 스님의 깊은 뜻이 여기에 그대로 배어있다.

 

깨완수토굴 앞으로 포매지에서 내려온 물이 흐르는 작은 개천이 있다. 모네의 수련에 견주어 설명했던 그 다리다. 다리 위 쌓인 눈이 녹지 않아 겨울 운치를 더해 준다. 다리 밑으로 얼음장 아래로 물이 흐르고 드문드문 깨진 얼음 사이로 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햇살이 비치는 얼음 녹은 틈새로 언 듯 피라미 몇 마리가 떼지어 간다. 한겨울의 얼음 밑에도 끈길긴 생명이 살아있다.

 

토굴로 가는 다리 위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며칠이 지나도 녹지 않은 걸 보면 큰 눈이 내렸을 것이다. 때마침 수토굴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제집을 찾아가는 양 느릿한 걸음으로 다리를 건넌다. 부잣집 주인의 팔자걸음으로 걷는 걸 보니 이곳을 제집 삼아 사는 고양이가 맞나 보다. 고양이도 현불사의 불심을 받아서인지 맑고 편안한 얼굴로 느긋하게 내 얼굴을 올려본다. 도시의 고양이처럼 사람 그림자에도 화들짝 놀라 잽싸게 달아는 그런 영악함이 없다. 느긋하게 사람과 벗하며 함께하는 걸로 봐서 보통내기가 아니다.

 

현불사에는 건물 두 곳에 방이 있다. 두 곳 다 일반인들의 템플스테이를 위해 개방되어 있다. 종일 있어도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오직 산새 소리만 들리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곳이다. 스스로 발품 팔아 이곳저곳 다니지 않으면 모든 것이 멈춘다. 홀로 있어 외롭지 않은 이는 고독을 즐길 수 있다. 그러 사람에게는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활력을 되찾기에 더없이 좋다. 더구나 부처님 품 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점은 불자가 아니라도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 부처님의 자비와 은덕이 넘치는 이곳에서 머문다는 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이다.

 

현불사 맞은편 깨완수토굴에는 정념, 정진, 통찰의 세 방이 있다. 이 방에는 두 사람이 머물 수 있고 방안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마음 맞는 두 사람이 와서 머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슬픔을 둘이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둘이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혼자보다 둘이서 지내는 산사의 하루는 부처님의 은덕도 두 배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곳은 혼자 머무는 방이 있는 취정선원이다. 취정선원에는 스님의 거처가 있다. 스님께서 공부하시고 불심을 키우시는 곳이라 더욱 경외해야 할 곳이다. 이곳에는 큰 소원 방 대원’, 달을 가르키는 방 반야’, 자비사랑 방 자비’, 피안에 이르는 방 지혜’, 만족을 여는 방 자족이라 이름 붙은 5개의 방이 있다. 방마다 책이 놓여 있고 나무 침대엔 깨끗한 이부자리가 놓여 있다. 혼자 공부하기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기가 그만이다. 더구나 문살을 상, , 하의 세 곳에 띠 모양으로 배치한 띠()살문에 한지를 바른 방이라 무척 아늑하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가 정겹다. 아침에 방문을 열면 왕금산 끝자락의 기가 온몸을 적시고 건너편 산의 정기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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