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일)
고래의 꿈
“이런 늦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직장인의 하루가 밝았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짧은 팔이 7시를 갓 지나고, 긴 팔은 10분 앞을 막 지났다. 벽시계의 종은 쉼 없이 좌우로 움직이며 부지런히 시간을 재촉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급한 걸음으로 출근을 서두른다.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면 직장으로 가는 도로에는 이미 차들로 만원이다. 주차장에 가만 서 있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한참 차가 밀릴 때면 주자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럴 때면 채 풀지 못한 피로에다 아침 출근길의 피곤함이 더해진다.
꽉 막힌 도로가 싫은 사람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출근 시간에는 어느 곳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은 사람이 얼마나 탈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한다. 태우고 또 태워 빈틈을 한 치도 남기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고 버스라고 사정이 별반 나을 게 없다. 동네 주위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조차 사람들이 들어차 발뒤딜 틈이 없다.
이처럼 대부분 도시 직장인은 간밤에 피로를 채 풀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하루 일상을 시작한다. 제대로 풀지 못한 피로가 쌓여 어느 순간부터인가 초췌한 몰골과 일상에 찌든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날이며 직장 다니는 게 참 힘들며 한숨을 내쉰다. 가진 거라고는 오직 몸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은 운명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부모님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직장 생활에 매달릴 일 없는 사람이야 축복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은 다 거기서 거기까지다. 거창하게 빈부의 격차를 들먹여도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피곤한 사회를 살아간다.
대학에 근무하는 나로서야 이 정도까지 힘든 삶을 사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겪고 있는 경제적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형편이 되지 못한다. 아직 감내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고, 노후 생활을 생각하면 가끔은 현실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에뜨랑제(étranger)가 되고 싶지만, 생각보다 강한 현실의 무게를 떨칠 수 없다. 가끔 학교 안의 높은 언덕 벤치에 앉아 멀리 보이는 인천대교를 바라보며 어디론가로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생각만의 일탈로 이방인의 꿈을 접는다.
이번 3사 여행은 떠나고 싶은 나의 꿈을 실현한 좋은 기회다. 첫날 하조대 밤바다의 풍경이 오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남해 밤바다의 추억을 불러왔다. 현불사의 여름 풍경은 도시의 일상에 지친 내 영혼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깊은 산속에 있다 해서 좋은 도량인 것은 아니다. 중생이 제 발로 찾아와 일상의 고뇌를 잠시 내려놓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기도하고 공부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깨치는 도량으로는 현불사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휴휴암은 워낙 동해의 아름다운 해변에 자리한 덕에 한번은 가볼 곳으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너무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탓에 공부하는 도량으로 삼기는 힘들다.
지난 시간이 아름답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건 되돌아갈 수 없는,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태양보다 빛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것은 오직 내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떠나버린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크게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시간과 세월은 그것을 아름답게 채색해서 추억으로 남긴다. 갈 곳 몰라 방황하고 길을 잃고 헤매던 20대 시절 동해는 고래의 꿈 때문에 밤을 뒤척였다. 세월이 한참 흘러 동해에 서니 그토록 그리던 고래는 이미 사라지고 내 가슴에는 헛헛한 이루지 못한 꿈의 잔해만 남았다.
휴휴암을 나온 머스탱은 동해를 남기고 월정사와 상원사로 가기 위해 오대산을 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잘 닦인 국도를 타고 오대산 진고개를 넘었다. 흐린 하늘에서 그예 비가 내리고 도로가 금새 비에 젖는다. 머스탱은 전혀 흔들림 없는 진중함으로 해발 900 미터의 고개를 넘는다. 진고개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고, 도롯가의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큰 입 간판이 이곳이 오대산 자락임을 알려준다. 안개비가 피어나고 휴게소 맞은 밭에는 고랭지 배추들이 가지런히 줄을 서서 속을 채우고 있다. 이제 곧 끝날 여름과 함께 하얀 속살 가득 채운 배추들은 도시인의 식탁에 오른다. 사람들은 오대산의 햇살 아래 영근 하얀 배추의 속살을 뜯으면 지친 하루를 달랠 것이다.
진고개 정상에서 월정사로 가는 도로에는 온통 단풍나무로 가득하다. 전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 등 셀 수 없는 종류의 나무들이 앞다투어 오대산을 초록으로 채운다. 가을이 오면 오대산이 붉게 타오르며 미학의 절정을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이들 덕분이다. 10월 중순이나 말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이 길을 달린다면, 깊은 가을의 정취로 온몸이 붉게 물들 것이다. 강원도는 산이 많아서인지 어딜 가도 눈에 밟히는 풍경이 아름답다. 우리를 태운 머스탱은 아름다운 경치를 비켜나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 월정산 입구로 들어선다.
1500년, 햇빛과 달빛의 월정사
월정사(月精寺)는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기슭에 자리하였는데,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오대산의 중심 사찰이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절이 완전히 불타버렸고, 그만큼의 중건을 거치면서 약 15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냈다. 월정사는 신라를 거쳐 고려 그리고 조선을 지나 오늘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오대산에서 많은 중생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그간 수많은 고승이 월정사에서 부처의 말씀을 전했으며, 일상의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을까? 3번의 왕조가 뒤바뀌고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를 극복한 월정사는 1500년의 햇빛과 달빛이 빛은 역사를 품고 있다.
월정사 입구의 금강교에서 속세와 사찰을 가르는 일주문에 이르는 1킬로미터의 길 에는 평균 80년 이상 된 전나무가 빼곡히 서 있다. 이 전나무숲길은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의 그것과 함께 한국의 3대 전나무숲길로 꼽힐 정도로 이름이 높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심었다고 하는 오대산 전나무숲길은 고려 말부터 약 천년의 세월을 지킨 천년의 숲이다. 라고도 한다. 이 길에는 평균 80년 이상이 된 전나무 1,8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는데, 수령이 600년도 더 된 최고령 전나무가 2006년 태풍 에위니아로 인해 넘어진 흔적을 볼 수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도 보인다. 땅의 기운을 느끼며 흐르는 계곡 소리를 들으며 걷는 숲길은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제대로 전한다.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맑은 향이 온 숲을 휘감고 간간이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여름 숲속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그윽한 솔향 가득한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월정사 일주문에 도달한다. 이제 이 문을 건너 속세의 묵은 때를 벗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선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니 여름 휴가철이나 꽤 많은 사람이 붐빈다. 툇마루 보수 공사를 하는지 인부들의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나무의 하얀 속살을 드러낸 원목들이 새로 마루를 까는 데 사용된다. 망치질 소리와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사진을 찍느라 소란스러운 관광객으로 인해 절 경내는 시끌벅적하다. 경내에는 본당인 적광전(寂光殿)을 비롯해 서방 극락정토 교수 아미타불을 모신 수광전, 사찰의 강당에 해당하는 대륜법전 등 많은 전각과 건물들이 있다. 전국에서도 이름 높은 유명 사찰답게 절의 풍모가 매우 크고 위용이 당당함을 알 수 있다.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적광전이라 한다. 그런데 월정사 본당인 적광전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음에도 적광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원래 이름인 칠불보전(七佛寶殿)을 절을 중건하면서 탄허스님이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불렀다. 그 후 월정사에서는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의미로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엄격한 형식보다 부부처를 중생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본다.
월정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을 꼽으라 하면, 누구라도 10세기 경인 고려 시대에 만든 약 15.2미터 높이의 팔각구층석탑을 들 것이다. 사람들은 적광전 부처님을 뵙기 전에 이 탑에 들러 사람들은 저마다의 염원을 담은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이 탑은 8각 모양의 두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뒤에 머리 장식을 한 모양으로 고려 시대 초기에 유행한 석탑 모습이다. 석탑의 꼭대기는 금동으로 세련된 조각품으로 장식하였다. 에르메스, 불가리, 피아제 등 현대의 명품 기술과 견주어도 손색 없는 화려한 장인의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월정사 8각9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석탑으로 국보 제48호로 지정되어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특히 석탑 지붕의 추녀 끝에 달린 구리로 만든 모두 80개의 풍경(風磬)은 가히 이 탑의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독경 소리와 함께하는 석탑의 풍경의 소리는 그 청아함이 오대산으로 울려 퍼진다. 그럴 때면 일상의 번뇌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해줄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을 황홀한 불법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런 기쁨을 위해 오늘도 많은 중생이 월장사로 오는 다리품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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