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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황금빛 연인들

by 전갈 2022. 3. 29.

색의 원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하얀색의 태양 빛을 프리즘으로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그리고 보라의 7가지 색으로 분해하였다. 뉴턴은 만류 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과학의 역사를 새로운 차원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과학자이다. 그런 그의 뛰어난 재능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7가지 색깔을 발견하고 색채의 혁명을 불러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화려한 색감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도 그의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색채를 파동과 입자의 과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분석한 뉴턴과는 달리 괴테는 색채가 빛과 어둠, 밝음과 어둠의 힘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어둠의 힘이 빛을 묽게 만들고 빛의 힘이 어둠을 묽게 하는 힘의 상호작용으로 색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둠이 밝은 힘을 약하게 하면 노란색이 나오고, 밝은 빛이 어둠을 약하게 하면 푸른색이 된다. 뉴턴은 빛이 일곱 빛깔의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지만, 괴테는 색채는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 빛과 어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학적 논리를 중시한 뉴턴에게 있어서 순수한 색채란 붉은색, 오렌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군청색, 보라색을 뜻한다. 이에 반해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중시한 괴테는 순수한 색채란 빛과 어둠을 뜻하며 푸른색과 노란색은 빛과 어둠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색채에 관한 뉴턴과 괴테의 생각의 차이는 과학자와 철학자의 차이만큼 차이가 크다. 뉴턴은 색채의 세상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았고 괴테는 철학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뉴턴 못지않게 색채를 사랑한 괴테는 일찍이색채는 빛의 고통이다.”고 말했다. 원색광인 태양 빛이 대기 중의 먼지와 공기 등과 부딪치는 산란 현상을 빛의 고통이라 말하면서 그 고통이 빚어내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빛이 깨지는 아픔이 없었다면 세상은 온통 무채색으로 빨간 장미도 노랑 해바라기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괴테는 파란색과 노란색이 색채의 중심이라 생각하면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파란색 연미복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다. 괴테는 자신이 좋아한 파란색과 노란색을 통해 베르테르의 이루지 못한 아픈 사랑을 색채의 미학으로 표현하였다. 선홍빛 붉은 피, 파란색의 연미복, 노란색의 조끼는 베르테르의 죽음을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하였다.

 

황금빛 연인들

불우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만큼 노란색을 사랑한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서, 평소 말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한 내성적이었다. 그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빈센트라는 형이 있었다. 고흐를 임신한 그의 어머니는 아기를 잃은 슬픔에 매우 절망하였고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부모는 일 년 후에 태어난 고흐를 죽은 형의 이름인 빈센트라고 부를 정도로 새로 태어난 고흐에 대한 기쁨보다는 죽은 아기의 슬픔에 더 빠져있었다. 고흐는 매년 자신의 생일에 형의 무덤에 가서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지켜보고, 이때의 기억은 고흐의 무의식 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자신도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을 것이다.

 

소년으로 자란 고흐는 형의 작은 무덤을 찾았다가 노란 해바라기 꽃을 발견하였다. 그 뒤부터 고흐는 자주 형의 무덤가를 찾았고, 그곳에 핀 노란 해바라기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사랑하였다. 고흐가 노란색을 사랑한 것은 평생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만큼이나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이 된 형의 죽음과 그리고 형의 무덤가에 핀 노란 해바라기 꽃은 그의 일생을 따라다닌 천형과 같은 것이었다.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자살하던 해인 37살까지 십년 남짓 그림을 그리다 간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1886년 파리의 몽마르뜨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고흐의 그림들은 우울하고 어두운 색조였다. 1881<난로 옆의 지친 농부>, 1885<감자 캐는 여인>에서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 속에서도 노란색의 은은함이 빛을 더해주고 있을 정도로 노란색과의 인연이 깊은 화가였다. 고흐는 그토록 동경했던 고갱과 아를에서 함께 생활했던 집의 이름을 <노란 집>으로 붙일 정도로 노란색에 대한 무한한 갈망과 애정을 보였다. 그 후 그는 <아를르의 침실>, <보리밭>, <오베르교회> 등 노란색이 주를 이루는 뛰어난 그림을 남기면서 <해바라기>와 함께 노란색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명화를 남겼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황금의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화가로서 이름이 높다. 그는 황금색이 가진 공허함을 자극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허영심을 교묘히 그림에 묘사하였다. 대표작인 <키스>에서는 남녀의 키스 행위라는 에로티시즘을 노란 금빛의 화려함으로 채색함으로써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하였다. 위와 부, 신성함과 욕망을 상징하는 색채인 노란 황금색을 즐겨 사용한 클림트는 황금색의 주술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노란색과 황금색으로 치장한 관능적인 여인이 등장함으로써 황금색 에로티시즘을 완성했다.

 

키스(1907) - 구스타프 크림트

 

 

 

오방색의 노랑 

오방색의 중심 노랑

한국과 중국은 예로부터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까만색의 5가지 색을 동서와 남북, 그리고 중앙의 다섯 가지 방향을 나타낸다고 해서 오방색이라 불렀다. 동쪽 방향은 태양이 떠오른 곳으로 나무가 많고 생명의 푸름이 무성하기 때문에 청색으로서 계절적으로는 봄을 뜻한다. 서쪽 방향은 흰색으로 가을을 의미하고 음기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남쪽 방향은 붉은 태양을 담은 적색으로 생명의 근원인 양기를 나타내며 한여름의 뜨거움으로 기억한다. 북쪽 방향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로 보고 계절적으로는 겨울을 의미한다. 가운데 방향은 땅의 중심으로 해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여기고 빛을 상징하는 광명을 노란색으로 표현하였다. 노란색은 밝은 색으로 방위의 중앙에서 만물을 관장하며 황금들판의 곡식처럼 풍요와 부귀영화를 뜻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노란색은 황제의 색이면서 때론 고단한 평민의 색깔이기도 했다. 밝고 순수한 노란색은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흐리고 탁한 노란색은 나쁜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노란색은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색이어서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에반 헬러의 <색의 유혹> 에 따르면, 1445년 함부르크는 창녀들에게 노란 머리 수건을 쓰게 했고, 1506년 라이프치히는 창녀들에게 노란 망토를 입도록 했다. 이탈리아 메란의 창녀들은 노란 구두끈을 사용함으로써 여염집 여인들과 분명히 차별을 두었다역사적으로 노란색이 가장 비극적으로 사용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정책에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서 가슴에 반드시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도록 강요하였다. 다윗의 별은 원래 파란색인데 히틀러가 유태인을 억압하고 차별화하기 위해 노란색 별을 달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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