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이 사랑한 초록색
우리에게는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로 유명해진 화가가 마르크 샤갈이다. 정작 샤갈이 그린 <나와 마을>에는 눈이 내리지 않지만, 그의 고향 마을에 눈이 많이 온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시인의 시상이 돋보인다.
마르크 샤갈은 자신의 그림에는 꼭 초록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초록색을 통해 고향 마을의 푸름을 그리워하였고 자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염소를 생각하면서 고향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달랬다. 피카소는“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라고 격찬했다. 샤갈이 아름다운 색채의 세계를 보여준 뛰어난 화가라는 칭찬의 뜻이다.
모든 화가들이 그러하듯 마르크 샤갈도 그림을 그릴 때,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초록의 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의 그림에서는 나타나는 초록색은 고향 마을인 러시아의 작은 도시인 비데프스크에 대한 그리움을 듬뿍 담고 있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유대교를 믿었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이 수탉이나 암소 같은 동물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믿음을 갖고 자랐다. 샤갈의 그림 속에서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환생하는 그림이 많은 것은 종교적 배경 때문이다.
1911년의 그린《나와 마을》에는 커다란 암소와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이 그림은 소의 모습과 붉은색 바탕에 흰색이 섞인 고향 풍경이 배경으로 들어와 있다. 왼편에는 젖을 주고 묵묵히 일하는 모성을 연상시키는 염소를, 그리고 오른편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짓는 자신의 초록색 얼굴을 그렸다. 그림의 윗부분에는 교회와 집이 있는 목가적 풍경이 나오고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귀가하는 남편을 맞이하는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와 마을>은 샤갈이 고향을 떠나 파리에 머물면서 그린 그림이다.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의 대비가 돋보인다. 염소의 얼굴과 초록색 사람의 얼굴은 샤갈의 그림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유대교와 초록색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고 다소 몽환적인 그림으로 샤갈의 애틋한 고향에 대한 추억이 빚어낸 환상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샤갈은 녹색과 파란색을 적절히 섞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샤갈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에는 주로 초록색을 칠했다. <에펠탑의 신혼부부>에서 사랑하는 여인이자 부인인 벨라와 같이 공중을 떠다니는 환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늘을 나는 부부는 차가운 색조의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표현하였다. 샤갈은 화려한 색채를 통해 사랑과 증오와 같은 인간 감정에서 흐르고 있는 모든 것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빨강, 노랑, 분홍, 초록의 물감들이 그의 그림을 화려하게 채색함으로써 색채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자연의 초록
뜨거운 열기로 시골 길 바닥이 펄펄 끓고 왈왈되던 누렁이도 혀를 길게 빼고선 졸고 있다. 한여름에는 키 큰 미루나무의 풍성한 초록이 더위를 식힌다. 푸른 잎 무성한 나무들이 보이는 초록의 향연은 무더운 여름날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천연의 색깔이다. 나뭇잎과 들판의 풀, 심지어 우물가의 이끼까지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더위를 식혀준다. 땅에서 움트는 새싹의 순결한 초록빛과 지천으로 깔린 산과 들의 초록빛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마음을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초록은 신선함과 젊음, 건강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라 갓 수확한 야채의 신선한 향내는 힐링에도 빠지지 않는 재료이다.
초록색 식물은 광합성(photosynthesis)을 통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호흡에 꼭 필요한 산소(oxygen)를 만들어준다. 녹색이 울창한 숲에 가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도 초록색의 식물들이 주는 맑고 깨끗한 공기 덕분이다. 깨끗한 자연, 청정한 환경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초록색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위안하는 희망과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록색을 깨끗한 이미지의 색깔,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자연의 색깔로서 좋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빛을 겹쳐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 때 가장 많은 수의 색깔을 만들 수 있는 기본색을 빛의 삼원색이라 한다. 태양빛을 프리즘에 비쳐서 나오는 7가지 빛의 색깔 가운데,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을 겹쳐 비출 때 가장 많은 가지 수의 색깔을 만들 수 있기에 이들을 빛의 삼원색이라 한다. 빨강과 초록의 빛을 겹치면 노랑, 빨강과 파랑의 빛을 겹치면 주홍, 초록과 파랑을 겹치면 청록이 나타나듯 이렇게 다양한 색의 빛을 겹치는 방식으로 많은 색을 만들 수 있다. 초록색은 여러 가지 색을 만드는 데 필요한 근원이 되는 세 가지 색깔 가운데 하나이다.
여러 가지 색깔 가운데 사람의 눈은 초록색을 잘 인식하고 멀리서도 볼 수있다. 교통 표지판이나 신호등에 초록색이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식물의 잎이 푸른 엽록소가 초록색을 만들고, 초록색은 사람의 시력을 좋게 하는 기특한 존재다. 초록색이 적은 도시 사람보다 나무나 숲이 많아 초록색이 무성한 농촌 사람들의 시력이 더 좋다.
초록색은 전통적으로 자작나무, 오리나무, 사과나무의 새싹과 나무껍질 그리고 서양톱풀, 히드, 이끼, 고사리까지를 사용해서 염료를 만들었다. 옷감을 잿물에 담가 기름을 뺀 다음 녹색 식물로 죽을 끌인 뒤 담가서 여러 날 끓였다. 이들 염료는 값이 싸고 독성은 없지만, 색이 흐리거나 잿빛을 띤다. 그리고 물빨래나 햇볕에 쉽게 바랬다. 초록색 염색은 쉽게 변질되는 특징을 가지고, 이 때문에 초록색은 변절을 나타내는 상징색이 되기도 했다.
색상환 표를 보면 녹색은 빨강의 반대편에 있는 보색 관계에 있다. 사람들의 감정에는 열정의 빨강과 냉정의 파랑이 가장 대조적인 성격의 색으로 느껴진다. 이에 반해 녹색은 빨강과 파랑의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색을 완충시키는 중립적인 색이다. 녹색은 지나친 열정을 억제하고, 깊은 우울함에 생기를 불러넣는 역할을 한다. 녹색은 편안함과 관대함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