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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젊은 베르테르의 파란색 고독

by 전갈 2022. 3. 28.

 

파란색의 유혹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랑이라고 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46%가 파란색을 좋아하고 15%가 녹색을, 12%가 녹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깔로는 20%의 사람들이 갈색을 꼽았고 17%의 사람들이 분홍을 손꼽았다. 파랑을 싫어한다는 사람은 겨우 1%에 그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 파랑을 좋아한다.

 

파랑은 빨강, 녹색과 함께 빛의 삼원색 중 하나로서 빨강과 흰색 다음으로 국기에 많이 쓰이는 색깔이다. 파란색은 희망과 고요를 나태는 색이며 생명력과 긍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파란색으로 바다와 하늘을 떠올리고 시원함, 상쾌함, 그리고 맑음을 느낀다. 이처럼 하늘의 맑음과 물의 깨끗함을 지니는 파란색은 특유의 시원한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늘 청량함을 제공한다. 파란색은 어떤 색보다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론 차갑지만 안정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진취적이고, 귀족적이면서도 여리고, 여성적이면서 도도한 이미지의 색이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강렬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빨간색과는 대조를 이루는 차가운 색이다. 빨간색이 열정적이고 감정적이라면 파란색을 차갑고 이성적이다. 사람의 호흡을 빠르게 하고 피를 뜨겁게 만드는 빨간색과는 달리 파란색은 맥박을 느리게 하고 더운 피를 식힌다. 파란색이 가진 이성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는 파란색을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 빨간색이나 주황색같이 너무 튀지 않으면서 세련된 품격으로 은근하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다. 파란색이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첨단 SNS 회사는 로고로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청색 염료는 인디고가 널리 사용되었고 특히 인도산이 유명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인디고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청색 염료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 구하기 힘든 밝은 파란색 대신에 어두운 파랑을 접한 사람들은 창백한 이미지로 인해 멀리 하였다. 로마인들은 파란색을 어둡고,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생각해서 멀리했다. 로마제국에서는 장례 의복에 파란색을 사용하였고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을 추하다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로마 시대를 지나 중세 중기까지 유럽에서는 파란색을 싫어하였고, 왕족이나 귀족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색으로 취급하였다.

 

이렇듯 중세 시절의 파란색은 궁정이나 귀족이 싫어하는 색이었다. 성당 내부를 장식하는 모자이크 제작에 밝은 파란색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후일 비잔틴 예술과 초기 기독교 예술로 이어진 파란색은 모자이크에서 바탕색과 혹은 빛을 표현하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파란색은 오랫동안 외면받았으나, 12세기에 들어와 성당의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사용하면서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12세기가 지나면서 가톨릭교회의 유리창에서 파란색 모자이크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제 파란색은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그림 속의 성모 마리아가 파란색 옷을 입게 되면서부터 파란색은 주류사회의 색으로 등장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파란색 옷을 즐겨 입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금욕적 교리를 중시하는 교회는 화려한 의상은 대신에 소박한 파란색 의상을 권유하였다. 이제 파란색은 슬픔의 상징, 감수성의 상징으로 흰색과 더불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색깔이 되었다이런 질곡의 역사를 거쳐 파란색은 슬픔의 상징, 감수성의 상징으로 흰색과 더불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색깔이 되었다. 파란색이 가지는 사랑과 우수, 그리고 지성과 고독같은 낭만적 상징이 사람의 마음을 끈 것이다.

 

베르테르의 파란 슬픔

파란색 특유의 고독하면서도 우울한 느낌 때문일까. 괴테는 1774년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베르테르의 고독과 우수를 베르테르가 입었던 연미복의 파란색으로 상징하였다. 베르테르가 자살하던 날 받쳐 입은 조끼의 노랑과 연미복의 파란색은 괴테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색깔이다.

 

베르테르는 파란색 연미복을 입고 참석한 무도회에서 로테라는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가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고자 여행을 떠났으나 이내 돌아와 그녀 주변을 맴돈다. 베르테르가 여행에 돌아왔을 때는 로테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잊지 못한 베르테르는 괴로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적극적인 구애가 실패로 끝나고 그녀로부터 절교를 통보받는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한다. 파란색 연미복과 노랑 조끼를 입은 채 선홍빛 피를 흘리며 베르테르는 죽어갔다.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많은 청춘의 열정으로 방황하던 유럽의 젊은이들은 고독과 우수에 찬 얼굴로 파란 연미복과 파란 조끼를 입고 다녔다. 사랑의 열병을 이기지 못한 젊은이들이 끝내 파란 연미복과 파란 조끼를 입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훗날 사람들이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부르는 동조 자살 현상이 최초로 일어난 것이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

20세기 최고의 추상파 화가로 칭송이 자자한 피카소는 파란색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다. 피카소는 처음에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차가운 인디고와 코발트 블루 색상으로 주로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가 파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1901년과 1904년을 피카소의 청색 시대로 불릴 만큼 그는 파란색에 빠져있었다. 이 시기에는 피카소의 그림 대상은 맹인 거지와 방랑자 등과 같이 우울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집에 땔감이 없어서 자신의 그림을 태워 지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던 피카소의 우울한 감정이 파란색에 투영되었다. 그는 먹을 것이 없는 비참한 삶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그 고통을 짙푸른 청색으로 표현했다.

 

훗날 추상파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피카소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이 피카소가 20대 초반인 청색 시대에 그린 그림들이다. 극심한 가난의 고통에서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무명시절인 청색 시대의 그림들이 일반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피카소의 작품들이다. 후기의 추상화와는 달리 청색시대의 그림은 알코올 중독자, 곰팡내 나는 싸구려 선술집 풍경, 가난한 이들의 절망적 표정 등 우울로 범벅이된 일상의 풍경을 그렸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감상하기 쉽다. <인생>, <늙은 기타수>, <맹인의 식사>, <셀레스티나> 등의 작품을 그린 피카소의 우울한 20대의 표상인 청색시대에는 파란색의 색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삶> 피카소(1903)

 

1903년 그린 <>(La Vie (Life))는 피카소가 청색시대에 그린 작품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그림은 창백한 느낌을 주는 청색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으며 온통 허무가 묻어난다. <>에서 핏기 없는 나체의 여인은 역시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에게 기대고 있다. 그 옆의 아기를 안은 나이든 여인은 표정 없는 창백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삶에 대한 열정과 따뜻함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는 고독이 뚝뚝 떨어진다. 이 시절 피카소의 젊은 영혼은 절망과 우울, 가난의 고통으로 가득한 우울한 파란색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울트라 마린 블루

파란색 가운데서도 가장 광채가 아름다운 파랑은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중세 화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귀하신 몸이다. 울트라 마린 파란색은 보석의 일종인 청금석을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예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구해야 했다. 중세의 화가들은 교회의 벽화를 많이 그렸는데, 성모 마리아의 파란 옷을 칠할 때는 울트라마린 블루를 사용했다. 울트라 마린은 고귀한 파란색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세월이 흘러도 쉽게 색상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주머니가 가벼웠던 까닭은 울트라마린을 사는 데 돈을 많이 지출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수태고지(1434) - 얀 반 에이크

 

울트라마린 다음으로 유명한 파란색은 코발트블루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코발트광석을 사용해서 이 색을 만들었다. 에바 헬러에 따르면 코발트 광석은 페르시아에서 주로 생산되며, 이슬람 모스크의 푸른 타일의 제조 등에 쓰이기 시작했다. 8세기 이후 중국으로 코발트가 수입되어 청화백자를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광산에서 푸르게 빛나는 광석들이 요정의 일종인 코볼트(Kobold)의 눈처럼 보인다고 해서 코발트란 이름을 붙였다. 반 고흐van Gogh가 아를에서 그린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생레미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서 코발트 블루가 너무나 신비한 색채로 빛난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988) -빈센트 반 고흐&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생 레미의 별이 빛나는 밤(1989) - 빈센트 반 고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디고 블루를 사용해 왔다. 인디고는 스페인어로 청색이라는 뜻이고, 인도 및 중국 원산의 마디풀과 식물인 쪽·산쪽풀, 유럽산 겨자과에 속하는 식물인 대청 등에서 만들어지는 색상이다. 이들 식물로부터 인디칸을 추출하여 이를 적적한 수본과 온도에 맞춰 발효시키면 청색의 인디고를 만날 수 있다. 인디고 염료의 식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에 인디고블루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은 색깔이다

 

값싼 합성염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전까지는 염료의 가격 결정에 있어서 얼마나 쉽게 천연 염료를 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연에서 염료를 구하기 힘든 만큼 가격이 상승하고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가격dl 치솟게 되었다. 인디고나 쪽은 쉽게 구할 있기 때문에 햇빛에 쉽게 낡아 버리는 인디고 블루의 염료는 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그러나 청금석을 원료로 하는 울트라마린은 염료를 만드는 비용도 비싸거니와 아름다운 파란빛 때문에 수요가 폭증하였다. 그 결과 울트라마린은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고 성모마리아의 의상의 채색으로 사용될 만큼 귀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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