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없는 열정은 공허하고, 열정 없는 고독은 허무하다. 고독과 열정은 친구처럼 그렇게 나란히 내 마음에 살고 있다. 때로는 넘치는 열정으로 온 세상을 다 가질 것처럼 펄펄 뛰다가 어느 순간에는 깊은 고독에 침잠하여 열정을 외면한다. 사는 일에 그렇게 열심이다가도 문득 혼자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위안해 줄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 때는 깊은 상념에 빠진다. 사랑이 그리울 때면 고독이 뼛속 깊이 파고들어 마음을 흔든다.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은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도 무뎌지고 애틋한 기억마저 흐릿해 진다. 푸른 바람이 젖은 머리칼 어루만지듯 세월은 기쁨과 슬픔을 매만져 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대 소식에 아련한 마음이다. 아득한 기억이 가끔 되살아나면 행복한 웃음을 짓지만 때로는 아픈 가슴이 먹먹해진다. 함께 한 시간이 많을수록 함께한 추억도 많기에 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으로 잠 못 이룬 많은 밤들이 그저 미소로만 남은 줄 알았다. 바윗돌에 새긴 약속이면 비바람에 씻기지 않고 햇빛과 달빛을 머금은 전설이 된다. 그러나 마음에 새긴 언약은 쉽게 빛이 바래고 흔적마저 희미해진다.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대 소식에 설레는 마음을 어찌할까? 먼 남쪽에 살고 있는 그리운 이의 소식이 바람결에 묻어오면 어찌 마음 처연하지 않을까?
집으로 가는 길모퉁이에서 지친 옛 사랑을 만나면 데면데면 그렇게 지나칠 수 있을까? 터지려는 울음을 꾹꾹 삼키며 겨우 다잡은 마음이지만, 그 세월을 그리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옛 가구는 시간의 손때가 켜켜이 쌓여 윤이 나는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렇듯 그대는 세월이 흘러 오히려 더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을 것이다. 빛나던 청춘이야 아니라 해도 귀품 고운 자태는 여전 하리라. 귀밑 흰머리 늘어가고 눈가에 잔주름이 잡힌다 해도 그대 고운 얼굴이야 어딜 갈까. 천리 먼 길 밖에 있다 해도 그대의 모습과 향기로 알아 볼 것이다.
꽃 지는 밤에는 붉은 와인을 마셔야겠다. 낙조처럼 일렁이는 술잔 속으로 하얀 꽃잎이 떨어지면 추억과 눈물을 버무려서 칵테일을 만들 것이다. 사랑의 묘약이라고 할까? 시간은 어떤 약보다도 더 훌륭하게 아픔을 치료한다.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지혜를 일러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의 열정이 식고 사랑의 감정도 무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런 연락 없어도 그대 항상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속절없는 기다림을 잊으려 부지런한 나날을 보낸다. 맑은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라 애써 위안하며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간다. 문득 그대에게 소식이라도 오는 날은 참으로 바람이 따뜻한 날이다. 세월이 가면 누구나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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