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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1만 시간의 독서와 도끼

by 전갈 2022. 3. 24.

하루 1시간 40분씩 일주일을 생각하면 거의 10시간이 된다. 이렇게 1년 동안 생각한 시간을 모으면  520시간이 된다. 10년이면 5,200시간, 20년이면 1만 시간이 넘는 시간을 생각한다. 1만 시간의 규칙을 준수하려면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 가지 주제로 20년 동안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러 주제로 생각의 시간을 그만큼 할애했다는 뜻을 게다. 어쨌든 하루 1시간 40분가량 하루도 쉬지 않고 20년간 한다면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족한다. 뭔가 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은 책을 읽고 사유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하루 2시간씩 가까이 20년간 책을 읽는다면 쌓이는 지식의 양이 매우 어마어마하다. 한 분야의 책을 그리 오래 쉬지 않고 읽는다면 당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이다. 매일 그만한 시간을 책 읽기에 투자해 20년이 지나면 수천 혹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다.

 

학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지만, 그 이상의 독서량이 된다면 학자로서도 손색이 없다. 노력 말고 재능만 가지고 발현되는 천재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독서가 없이는 진가를 발휘하기 힘들다. 다만 일반인이 1만 시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면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으로도 재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천재의 장점이다.

 

독서는 글로 묘사된 장면을 이해하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때로는 문장이 어렵고 이해되지 않으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글이 묘사하는 분야가 철학도 되고 미학도 되고 심지어 물리학도 될 수 있다. 각 분야를 판단하는 뇌의 부위가 다르기에 두뇌의 전 영역을 고루고루 자극할 것이다. 또 뉴런과 뉴런 사이에 서로 정보가 교류되고, 그 과정에서 합쳐진 정보가 더 큰 정보를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 서로 융합되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뉴런의 전기 신호가 상호 교류되고 합쳐지면서 번쩍이는 섬광으로 발전하는 그것이 바로 창의적 생각이 된다.

 

지식이 쌓인다는 추상적인 의미가 사실은 물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머릿속에 든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다. 우리 뇌를 잘 들여다보면 지식이 많이 쌓이는 것이 우리 두뇌의 신경세포 줄기가 튼튼해지고 가짓수가 늘어나는 물리적 현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해도가 높다든지, 추리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단순히 머리 좋다고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할 것이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의 외형이 물리적으로 강화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물적 기반이 되는 두뇌의 외형이 달라져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인지능력이나 추리력과 같은 형이상학적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우리 두뇌의 물리적 조건이 개선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 뇌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가장 먼저 신경계를 이루는 구조적, 기능적 기본 단위가 되는 세포로, 자극을 받아들이고 신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분화된 구조인 뉴런에 대해 알아야 한다. 뉴런은 엄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고, 평생 우리와 함께한다. 다른 세포와는 달리 세포 분열하지 않으며, 영양 조건이 충분하면 일생 기능을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일부 뉴런을 제외하고 대부분 뉴런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독서는 뉴런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자, 뇌를 늙지 않게 만드는 불로초이다. 그런 점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프판츠 카프카 '변신'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꽁꽁 얼어버린 이성의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다. 그러니 어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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