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일(수)
런던에서 벨 에포크의 파리로 갔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몽마르뜨,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 퐁피두 센터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물랭 루주가 있는, 아직도 파리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몽마르뜨를 먼저 들렀다.
몽마르트르의 ‘몽(Mont)’은 ‘언덕’이라는 뜻이고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를 뜻한다. 아주 오래전에 순교했던 이들을 기리는 언덕이다. 해발 130m의 야트막한 언덕이다. 꼬불꼬불한 골목이 이어진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파리의 거리를 본다. 몽마르뜨에는 옛날의 보헤미안적인 느낌은 많이 사려졌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가 활동한다. 낭만과 예술이 넘치던 파리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은 사라졌어도 몽마르뜨에는 지금도 그 시절의 화려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몽마르뜨언덕을 가기 위해 Anvers(앙베르) 역에서 내렸다. 형형색색의 기념품을 파는 이동식 가게가 우리를 반긴다. 골목으로 들어서는 가게마다 엽서와 기념품, 그리고 그림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유난히 화창한 날씨가 기분마저 상쾌한 우리는 언덕을 쉬엄쉬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다들 미니 전차인 트램을 탔다. 우리도 얼떨결에 그 틈에 끼었는데 한 50 미터나 움직였나 벌써 도착했다.
언덕을 올라 제일 먼저 만난 것은 1870년에 지어진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라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성당 앞 계단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본다. 연신 셔트를 누르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전망 좋은 자리에는 쉴새없이 사람들이 밀려온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일요일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성당의 천장이 하늘만큼 높고 대리석 건물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사람들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미사를 보고 있다. 뒷편에서 관광객들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며, 발 소리 죽이고 성당 내부를 둘러본다. 창문의 모자이크 유리가 햇빛에 화려한 문양을 뽐낸다. 은은하게 퍼지는 찬송가 소리에 나그네의 마음도 편안해 진다. 우리도 초에 불을 밝히고 작은 바람을 기도해 본다.

성당을 돌아서 내려오니 화가들이 모여 있는 테르트르광장이 나왔다. 넓은 광장 가운데에 자리한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한다. 그 주위를 빙 돌아 무명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떤 이는 풍경화를 그리고 어떤 이는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린다. 한때 파리의 문화와 예술을 이끌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 생각하니 이들의 작품이 남달라 보인다. 지금은 이름없는 거리의 화가지만 언젠가 위대한 화가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도해 본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돌아서니 고흐와 그의 동행 테오가 살았던 ‘반 고흐의 집’이 나온다. 해바라기를 사랑했던 ‘나 보다 더 불행한 고흐’가 살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온다. 그 옆에는 작곡가 비제가 살았던 ‘조르주 비제의 집’ 도 있다. 골목 카페에 앉아 시원한 프랑스 맥주를 마시노라면 마치 예술가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몽마르트르 묘지(Climetiére de Montmaitre)에는 스탕달, 드가, 모로, 졸라 등 세계 문화와 예술의 천재들이 묻혀 있다. 사라진 그들의 시대를 생각하며 발길을 돌린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광장에 다시 들렀다. 화가들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기로 했다. 나를 그린 사람은 남미에서 온 사람인 것 같다. 여러 사람을 들러보았는데 초상화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 50유로를 달라고 하기에 두 사람이 그릴 테니 40유로로 하자고 흥정했다. 40분 정도의 시간을 꼼짝 없이 앉아서 포즈를 취했다, 간간이 고개를 들거나 옆으로 돌릴 것을 요구한다. 그의 요청에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나를 그곳에서 만났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뽀샵 처리를 하지 않고도 이렇게 젊음을 찾게 하다니 참 신기하다. 두 사람 몫으로 100유로를 지불하니 그가 돌아서서 살며시 20유로를 돌려준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하더니 40유로로 깎아준다. 그의 착한 마음씨에 기분이 좋아졌다.
몽마르뜨광장을 돌아서 오는 길에 만난 6월의 햇살이 정겹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그네의 발길을 가볍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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