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우등생이다. 의대에 진학할 생각이다. 아니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대 가는 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의 강요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정작 당사자는 연극에 관심이 있다. 학교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 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관객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는다.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공부도 잘하지만 되고 싶은 건 의사가 아니라 연극배우다. 아버지가 들으면 목덜미를 잡고 넘어갈 판이다.
연극이 끝나자 하나같이 그의 연기를 칭찬한다. 단 한 사람 아버지는 아들을 심하게 질책한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전학 보내 군사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은 아들은 압박감과 절망감을 맛본다. 아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아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넌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어야 해!!"하고 권위주의와 독선의 끝판왕인 아버지가 말한다. "10년도 더 걸릴 거예요. 아버지, 그러면 제 인생은..."하고 아들이 말한다. "그만해, 감상에 젖지 마!!"라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묵살한다.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과 의대에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갈등이다. 아버지가 핵 펀치를 날린다. "연극이라는 짓거리가 더 중요하냐? 넌 그런 건 다 잊어야 해!!" 아버지의 말에 절망한 아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아무것도 아녀요(nothing)"라고 말한다.
그날 밤 아들은 아버지의 권총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는다. 연극용 소품이었던 가시관을 머리에 써본 후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끝내 방아쇠를 당긴다. 연극배우가 되려는 아들의 꿈과 하버드 의대를 향한 아버지의 꿈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 개봉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에서 나오는 닐 페리(영화배우 로버트 숀 레너드)의 이야기다. 수재들만 모인 입시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라는 가상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학생들의 희망과 좌절을 그린 영화다.
후배를 볼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난다. 배경과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둘 다 의대 가기를 강요받았다. 닐은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자살하는 바람에 의대에 가지 못했다. 후배도 끝내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40대 후반에 젊은 치매에 걸렸다. 둘 다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를 뒀다.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숨 막히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또 한 사람은 그것이 화병이 되었다.
차라리 죽기 살기로 대들기라도 했더라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혹은 '너 때문에 사는 거 알지?' 한두 번은 들어봄 직한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엄마 아빠가 너한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줄 잘 알지?' 이런 말을 듣는 아이들 마음은 커다란 돌덩이를 삼킨 기분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행하는 잔인한 가스라이팅이다.
영화 속의 닐과 후배는 섬세한 성격을 지녔다. 연극을 좋아하는 점도 같다. 아버지가 극렬하게 반대한 점도 같다. 아버지에게 억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속으로만, 속으로만 삭였다. 연극을 하도록 했더라면 좋았을걸. 차라리 의대 안 가고, 연극을 하겠다고 죽기 살기로 대들기라도 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한 사람은 죽지 않았을 것이고, 또 한 사람은 젊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짚이는 바가 있다. 닐의 아버지보다 후배의 아버지가 더 권위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사건건 후배를 통제하고 간섭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청나게 잔소리를 해댔다. 오죽했으면 후배 어머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였다. 집안 분위기는 늘 숨이 막혔다.
후배의 성격은 수용적이다. 아니 그렇게 길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고함이 듣기 싫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위한답시고 한 행동이 자식의 내면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후배가 알츠하이머 진단받기 몇 년 전 후배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끝내 따듯한 말 한마디, 다정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후배는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 기회를 영영 얻지 못했다.
우리는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비판받거나 비난받으면 큰 상처가 남는다. 사람은 긍정적인 정서보다 부정적인 정서에 더 강하게 영향을 받는 '부정성의 편향'을 띤다. 후배가 받았을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가 아버지에게 대들고 차라리 탈선이라고 감행했다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후배를 볼 때마다 저항하지 못하는 모범생의 아픔을 느낀다.
닐의 아버지도 그렇지만 후배의 아버지도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닐도 후배도 건강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연극배우로 유명해지고 말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산다는 데 방점을 찍자. 도저히 밥벌이할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지금 의대 진학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한다.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의대 진학반이 생겼다. 이 정도면 열풍이 아니라 거의 광풍이다. 아이들이 모두 의사의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그 꿈이 진짜 아이들의 꿈일까? 부모가 강요한 꿈이라면 아이의 내면은 지옥 불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닐과 후배를 닮은 아이들이 생겨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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