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다’의 행동경제학적 시각
"대낮에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직 보디빌더가 주차 시비 끝에 30대 여성을 폭행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는데요."
어제저녁 JTBC에서 보도한 뉴스의 첫대목이다.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옥신각신 다투다가 급기야는 폭행 사태가 일었다. 경찰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겠지만, 후유증이 크게 남을 것 같다. 여성이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다면 크게 다쳤다. 왜 참지 못하고 폭행을 행사했을까.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한 비용이 막대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에 견줄 만하다. 법은 더딘 이성이고, 주먹은 빠른 감정을 뜻한다. 감정의 재바른 응징이 통쾌하지만, 자칫하면 경제적으로 큰 대가를 치른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행동경제학을 이 이야기에 적용해 보자. 카너먼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을 기억하며 알아보자.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미래는 늘 안갯속처럼 흐릿하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현명할지 늘 혼란스럽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선택하면 좋으련만, 인간은 자주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결정한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이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카너먼은 그 이유로 인간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논증했다.
카너먼은 심리학과 경제학을 제대로 융합해 인간의 경제활동을 분석했다. 전통 경제학이 주장한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카너먼의 주장이다. 대신 인간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남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심리가 행동을 뒤흔드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 공로를 인정받은 카너먼은 심리학자인데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됐다.
카너먼은 그의 저서『생각을 위한 생각』(이진원 옮김, 김영사, 2012)에서 이 같은 내용을 잘 정리했다. 이 책에서 카너먼은 인간의 뇌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시스템 1’의 두뇌는 자동적이고 일 처리 속도가 빠르고, ‘시스템 2’의 두뇌는 의식적이고 일 처리 속도가 느리다. 말하자면, 시스템 1은 충동적이고 직관에 의존하는 반면에, ‘시스템 2’는 논리적이고 신중하게 사고한다.
시스템 1은 본능적으로 빠르게 작동하고 자주 욱한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잠재의식이나 기억 저편에 축적된 지식을 반사적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객관적이지도 않은 주관적 기억의 단편을 자극하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시스템 2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통계적으로도 따져본다. 의지적이고 이성적으로 작동해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을 줄여준다. 시스템 2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파충류의 본능이 작동한다.
홈쇼핑 광고에 쉽게 넘어가는 것도 그렇고, 돈이 된다는 달콤한 말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것도 시스템 1의 작품이다. 요모조모 따져보지 않고 우연한 인연을 마치 필연으로 생각해 ‘앗, 바로 이거다!!’하고 결론 내리는 타입이다. 사람이 이익의 즐거움보다 손실의 고통이 큰 것도 시스템 1 때문이다. 우리 본능 깊이 자리한 손실 회피 심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악어나 뱀 같은 파충류의 행동과 많이 닮았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앞뒤 재지 않고 덥석 문다. 끝에 쇠꼬챙이가 달렸는지, 음식에 독이 묻었는지 따지지 않는다. 우리 뇌의 시스템 1은 우리 뇌에 각인된 파충류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욱하고 화가 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오직 감정만 폭발하는 그런 본능 말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스템 2는 더디지만, 시스템 1은 빠르다. 화나는 일이 생기면, 시스템 2가 나설 시간도 없이 시스템이 1이 행동으로 옮긴다. 그 결과로 씻을 수 없는 후회와 대형 참사가 남는다. 주차 문제로 일어난 시비가 끔찍한 폭행 사건으로 번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더디고 느리지만, 이성의 뇌인 시스템 2가 뇌가 작동하길 기다린다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뇌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따로 작동할까? 그것은 오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다. 인류의 오랜 숙원인 배불리 먹는 일을 해결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에나 그것이 가능케 됐다. 그전까지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엄혹한 시간을 거치면서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별별 경제학】, 【우리 안의 치매】, 【犬문학 산책】이라는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글을 쓴다.【별별 경제학】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경제적 경험을 주로 다룬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복잡한 경제 이론을 소개하기보다 생활 속의 별난 경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시리즈의 다음 글은 왜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따로 노는지 알아보는 내용이다. 충동의 시스템 1의 성급한 결정 탓에 경제적으로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면 더 신중하고 더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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