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여름밤 야외에 나가서 문득 밤하늘을 보면, 쏟아지는 많은 별이 빛을 내며 밤하늘을 수놓은 것을 본다. 도시를 떠나 지리산이나 설악산같이 높은 산에서 보는 밤하늘에는 셀 수 없는 별들이 반짝인다. 별들로 가득한 하늘을 우리는 끝없는 우주라고 부른다. 이러한 거대한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별 무리는 더 빠른 속도로 우주 끝점에서 밖으로 후퇴하고 있다. 우리 은하와 약 3억 광년 떨어진 은하는 1초당 약 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후퇴한다. 우주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에 별 무리도 더 먼 우주로 자리를 옮긴다. (이세영, 밤하늘의 문을 열다. 254쪽)
오늘 밤하늘에도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별들이 반짝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
---------------------------------”
빛나는 별에는 태양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붙박이별(항상)도 있고, 지구처럼 항성인 태양 빛을 반사하는 떠돌이별(행성)도 있다. 우주에는 행성과 항성을 구분하지 않고 별이라고 말하는 빛나는 별들이 셀 수없이 많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만 해도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우리 은하계와 같은 별 무리가 1,000억 개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별을 합치면 10의 22승 개나 된다. 이처럼 많은 별이 오늘도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시인이 애절하게 노래한 별들 가운데는 스스로 빛내는 항성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태양 같은 항성의 빛을 반사한 별이다. 그 별빛 하나에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그리고 어머니를 애타게 부른 시인의 영감이 아름답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많지만, 우리 태양계에서는 태양만이 스스로 빛을 낸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 수성, 화성 등의 행성은 태양 빛을 반사한다. 특히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햇빛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 만일 태양이 없다면 지구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다. 태양 빛이 없거나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금과 다르다면 생명체가 존재하기 힘든 불모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지금보다 더 가까우면 햇빛이 너무 강해서 땅이 엄청나게 뜨거워진다.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 표면의 평균 온도는 약 섭씨 179도이고, 밤낮의 온도 변화는 섭씨 영하 179~427도 사이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반대로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금보다 멀어졌다면, 지구의 평균 온도는 영하 수십 도로 곤두박질쳐 세상이 꽁꽁 얼었을 것이다. 지구보다 태양에서 먼 거리에 있는 화성의 평균 온도 약 영하 80도이고 목성이 평균 온도는 섭씨 영하 148도로 추워도 너무 추운 환경이다. 토성, 천왕성, 해왕성의 평균 온도도 각각 섭씨 영하 176℃, 섭씨 영하 215도, 섭씨 영하 214도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 빛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한순간이라도 태양 빛이 비치지 않는다면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고, 기온은 극한의 낮은 온도로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별이 된다. 밤이 되면 온도가 영하 180도까지 내려가는 화성이나 낮 기온이 무려 섭씨 467도까지 올라가는 금성과 비교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1억5천만 킬로미터는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한 햇빛을 만들었다. 우리는 지구에 내리쬐는 따스한 태양 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있다. 지구가 지금처럼 파란색을 띠고, 많은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양으로부터 내려오는 햇빛 덕분이다.
우리 태양계의 유일하게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인 항성 태양은 지구의 에너지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다. 태양계도 은하계에 속한 별들의 무리인데, 태양계는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약 2만5000~2만8000광년 떨어져 있다. 태양계와 은하계의 중심 사이는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약 2만500~2만800년 걸리는 거리이다. 태양은 지구 질량의 33만 배이고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85%를 차지한다. 태양계 내에서 독보적인 크기와 질량을 자랑하는 항성이다. 태양은 약 100억 년 전에 태어나 50억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췄다.
태양은 지구가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추고 생명체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태양이 없었다면 현재의 지구도, 인류도, 생명체도 없다. 지구는 45억6700만 년 전 태양계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약 10억 년이 흐른 뒤, 지구는 서서히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원시 지구의 바다를 덮은 마그마가 식으면서, 딱딱한 고체 바닥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와 충돌할 때 지구로 쏟아진 혜성의 암석 속에 들어있던 수증기가 방출되었다.
이제 지구의 대기 중에는 두꺼운 수증기 구름을 만들어졌고, 점차 비구름이 무거워지자 폭우가 쏟아졌다. 이렇게 내리는 비는 원시 바다에 물을 채웠고, 드디어 물이 가득한 바다가 탄생했다. 이 모든 일이 지구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한 태양 빛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달리는 빛은 태양을 출발한 후 8분 20초 만에 지구에 도달한다. 이 거리는 지구를 오늘날처럼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 지구와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가 중요한 까닭은 적절한 빛의 강도 때문이다. 거리가 태양과 더 가까웠다면 원시 바다가 만들어질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증기가 모두 증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지구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땅이 되었고 물속의 원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었다. 당연히 광합성 작용하는 생명체도 진화하지 않았고, 공기 중의 산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지구가 태양과 지금과 같은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생명체의 탄생에 필요한 물, 공기, 적당한 햇빛 가운데 어느 하나의 조건도 충족될 수 없었다. 지구는 태양계의 다른 별들처럼 그저 고요한 침묵의 별로 남았을 것이다.
사람 사이도 친할수록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잦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엉뚱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런 불쾌감이 들 정도로 상대가 격한 반응을 보이면, 당황을 넘어 화가 난다. 그러면 나도 언성이 높아지고 흥분해서 감정을 토로한다. 기대와 반응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의 충돌이다. 상대가 보일 반응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기대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한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사람을 대할 때 늘 실망할 거라는 걸 전제로 하면 좋다. 내가 어떤 호의를 베풀어도 그의 반응은 탐탁하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고 대응하면 내가 실망하거나 화날 일도 없다. 역시 그렇구나. 다음에는 다르게 접근해야지 하는 마음을 품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하면, 상대는 늘 격하고 반박하고 덤빌 것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면 모든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런 예상을 하고 말했는데, 상대가 쉽게 수긍하고 심지어 고맙다는 말까지 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아무리 이해를 시키려 해도 요지부동 자기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충고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이다. 그런 사람이 내 말에 동조하고 따라와 줄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다.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관심을 줄이면 생각을 덜 하고 생각을 덜 하면 기대하는 바도 적어진다. 그러면 실망할 일도, 화낼 일도 없어진다. 그들이 뭘 하건 마음대로 하라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화남과 실망을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가까이서 부대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다투기도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격이 없으면 늘 좋을 수는 없다. 서로 친하기에 범하는 결례도 적지 않다. 당연히 이해할 거라는 생각에 무심결에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언제나 내 편일 거라는 착각이 사람 사이를 힘들게 만든다. 그럴 때는 한 걸음 멀리서 보는 사이가 더 좋다.
이카루스의 밀랍의 날개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서 녹아내렸다. 더 멀리서 바라봤다면 땅으로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자신도 주체못하는 만용이 생기는 법이다. 제 분수를 헤아리는 겸양이 어느새 사라지고 감당하기 힘든 자신감으로 충만해진다. 큰 권력이든, 학교 내에서 작은 자리이든 유혹의 함량은 별반 차이가 없다. 둘 다 사람을 미혹하게 하여 스스로가 큰 인물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럴 때도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보면 알량한 권력이 얼마나 유한한가를 알 수 있다.
세상의 잡다한 일을 뒤로하고 내면을 다듬는 데 전력하자. 사소한 일이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말자. 불필요한 곳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마음 상할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미움의 출발도 사랑과 연정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관계도 영원히 지속할 수 없고 언젠가는 데면데면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 사이에서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이해해주기만 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빛바랜 영화 속이나 흘러간 유행가 가사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순애보이다.
한 벌 떨어지는 것이 늘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만든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실체가 잘 보이는 법이다.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믿음이 얼마나 큰 상처로 돌아오는지를 세상을 살아본 사람들은 잘 안다. 사람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누구나 단점을 가졌다. 그것이 큰지 적으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자람 없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은 결함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남을 가볍게 평하고 비난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행동도 없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정하듯 타인의 모자람도 넉넉히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옳음과 정의로움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극성 별빛은 방향을 알려줄 따름이지 최종 목적지로 삼기에는 너무 멀다. 애초부터 도달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다. 그렇듯 완전한 타인을 갈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한 발 떨어져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허물과 단점을 너무 당연히 포용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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