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6일(화)
“스님! 스님은 글도 모르시면서 어찌 진리를 안다는 말씀인지요?”
"달을 보라 했는데 왜 손가락을 보나?"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가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불가(佛家)에서 천년 넘게 전해온 가르침이다. 유래는 중국 당나라 시대 한 고승의 법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종(禪宗)의 제6조인 혜능(慧能·638~713) 선사. 개창조인 보리달마로부터 여섯 번째 종조인 혜능은 글을 모르는 스님이었다. 까막눈임에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구한말 경허 대선사의 3대 수법제자 중 한 명으로 부산 백양산 선암사에서 입적한 ‘천진불’ 혜월(慧月·1862~1937) 스님과 비견되기도 한다.
“스님! 스님은 글도 모르시면서 어찌 진리를 안다는 말씀인지요?”
“진리는 저 하늘의 달과 같고, 글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어느 날 혜능 스님과 한 비구니가 나눈 대화의 일부다. 비구니의 질문을 받고 내놓은 혜능 스님의 말이다. 자신이 진리를 제대로 깨쳤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글자를 알고 모르고가 뭐 중요한가.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다. 혜능 스님은 정작 봐야 할 달은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기억하는 비구니를 일깨웠다.
원래 이 말은 대승불교의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법문이다. 이 법문을 많은 고승이 인용했을 것이다. 혜능 스님도 이 법문을 이용해 설법을 하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 혜능 스님이 위의 경우에 말씀하셨는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설명하기에는 이만한 예가 없기에 많이 인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또한 달을 보면 되는 것인데 혜능 스님이 실제 말씀하셨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포도는 시고 감을 떫다.
“저 포도는 보나마나 맛이 시다.‘
“맞아 저 감은 분명 떫을 거야.”
이솝 우화를 빌리면 먼발치에 있는 포도와 감을 보고 여우 두 마리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손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포도는 역시 시고 감 맛은 떫다. 어차피 못 먹는 거 찔러나 보려 해도 그것마저 힘들다. 남는 건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뿐이다. 시고 떫기만 한데 뭐하려고 탐내니? 먹을 수 없는 여우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속을 달래야 할 것이다.
‘알고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분석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최근 내가 발표한 자료를 두고 한 말이다. 옳은 이야기다. 통계를 아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애초부터 그 이상의 통계 분석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기야 처음부터 난해한 통계 기법을 사용하는 주제였다면 내 능력 밖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걸 보는 그의 재주는 좋다. 다만 달을 봤으면 했는데 손가락 끝만 봤다니 안타깝다.
진리는 달이거늘 어찌 문자를 논한다는 말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면 되는데 기법에 매몰되면 어찌하나? 내 손에 닿지 않는 포도는 시고 감이 떫다 해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고약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지적에 기분 나빠하고 말 것도 없다. ‘소이부답(笑而不答)’라 했던가? 딱히 대답할 말도 없고 그저 웃고 말았다.
'느림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럴 수 있다. (0) | 2022.03.27 |
---|---|
공부... (0) | 2022.03.27 |
가야 할 때 (0) | 2022.03.27 |
'지혜의 시대와 어리석음의 시대' 그리고 룰스 레스토랑 (0) | 2022.03.25 |
몽마르뜨와 거리의 화가 (0) | 2022.03.25 |